[기자의 눈/장영훈]정부-지자체 구제역 침출수 신경전에 주민들만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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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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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훈 사회부 기자
장영훈 사회부 기자
“여기 좀 봐요. 이렇게 깨끗한데 환경 문제가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25일 오후 경북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야산. 구제역 매몰지를 안내하는 청통면사무소 공무원은 ‘침출수 유출 위험이 크다’는 환경부 지적에 어리둥절해했다. 기자가 실제 눈으로 확인해 봤을 때도 위험은 없어 보였다. 배수로도 잘 갖췄고 빗물 오염을 막기 위한 비닐 덮개도 상태가 좋았다. 다만 경사가 가파르고 땅 크기(900m²·약 270평)에 비해 묻은 돼지 수(2399마리)가 많았다. “돼지 수가 많아 폭우가 오면 무너져 내릴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담당 공무원은 “그래서 더 꼼꼼하게 관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겨우 인근 주민을 안심시켰는데 환경부가 침출수 유출 위험이 있다고 하면 현장에서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경북도는 지난달 초 환경부로부터 경북지역 구제역 매몰지 297곳 중 6곳이 ‘침출수 유출 가능성이 높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한 달간 해당 매몰지 관정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오는지 확인했고 주변 오염 피해도 살폈지만 별다른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도의 한 간부는 “답답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매몰지 관측정, 매립가스, 지하수 수질조사 등 구체적인 결과가 없는데 침출수 유출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불안만 키우는 게 아니냐”고 했다.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상황이다.

환경부는 분기별로 환경영향 조사를 실시하고 침출수 유출 가능성이 높은 매몰지를 지자체에 통보해 관리토록 하고 있다. 3분기(7∼9월)에는 전체 매몰지 4799곳 중 300곳을 선정해 조사한 결과 84곳이 침출수 유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환경부는 “환경 피해는 수십 년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단 1%의 유출 가능성이라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태도다. 다음 달 초에는 정밀조사를 실시해 침출수 유출이 확인되는 매몰지에 대해서는 지자체에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방침이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짧은 시간에 구체적인 유출 증거를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금까지 매몰지 주변 지하수 수질조사에서 침출수 유출이 확인된 관정은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들은 “막연한 유출 우려로 지자체에 떠넘기듯 과도한 부담을 지워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볼멘소리까지 한다.

환경부와 지자체가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주민 불안은 커지고 있다. 매몰지 인근의 한 주민은 “그렇지 않아도 늘 조마조마한데 침출수 유출 이야기가 나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좀 더 확실한 근거를 통해 위험을 알리고 지자체도 신뢰를 바탕으로 조치에 나서야 주민 불안도 줄일 수 있다.

장영훈 사회부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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