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통계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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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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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통계청인 엘스타트(ELSTAT)의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 청장이 재정위기를 부풀렸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스 ‘통계 조작’의 오랜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난해 폐지된 국가통계국 대신 새로 독립기구로 설치된 ELSTAT도 마찬가지라고 절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막은 정반대다. 게오르기우 청장은 논란의 핵심이던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를 애초의 13.4%에서 15.8%로 고쳐 발표했다. “‘통계 조작’을 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국익을 해쳤다는 이유로 고발된 것”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2006년 그리스 정부는 “성매매 종사자들의 밤낮 없는 노고로 경제 규모가 25%나 커졌다”고 자화자찬했다. 매매춘이나 도박 밀수 같은 암시장의 기여도를 고려해 GDP 산정에 포함하기로 했다는 거다. 그 덕분에 그리스 경제규모는 2005년 1800억 유로에서 2006년 1940억 유로로 커졌다. 알고 보니 이 모든 통계는 거짓이었다. 2009년 10월 새로 출범한 그리스 사회당 정부는 “전임 정부가 심각한 재정적자를 국민에게 감췄다”고 폭로했다.

▷통계에 속아 나라가 망하는데도 정신 못 차린 그리스를 보면, 통계가 곧 정책이고 자유민주주의의 관건임을 알 수 있다. 2010년 5월 그리스가 1차 구제금융을 받을 때 유럽연합(EU) 기준에 맞는 통계를 통한 국가재정 관리가 지원 조건에 포함됐다. 최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통계청의 10월 고용자 수 50만 명 증가 발표를 놓고 ‘고용 대박’이라고 표현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국민에게 체감되지 않는 숫자만 보고 ‘대박’이라니, 숫자놀음 아니면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통계청이 요구한 예산 가운데 ‘통계품질 진단 및 개선사업 예산’을 요구안 17억9300억 원에서 3억 원을 삭감하는 ‘본때’를 보였다고 한다. 2009년 결산 때 “다양한 실업지표를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국정감사와 결산 때마다 촉구했는데 번번이 외면했다는 이유다. 박 장관은 취업애로계층 통계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답했지만 국회의 주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통계 자체엔 죄가 없다. 정부와 통계에 대한 신뢰가 같이 간다는 게 죄라면 죄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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