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기업 회장처럼 돈이 많지 않으며 정부 고위 당국자처럼 영향력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작은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나는 고용을 창출하여 가계에 도움을 주고, 세금을 내 국가경제에 기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복잡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첨단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선진국 은행들이 ‘자산가치는 언제나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돈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대출을 해 줬고, 그것이 곪아터졌다는 것입니다.
친기업 vs 친수출 중심 대기업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것도 그때 다시 배우게 되었고, 그로 인해 외국 돈에 대한 우리 돈의 가치가 몇 달 사이에 40∼50%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적지 않던 이 회사는 환율이 오르자 몇 달 사이에 매출원가가 50%가량 올랐고, 매출이익률 영업이익률은 감당 못할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내심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처럼 조만간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겠지 하고 기대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달랐습니다. 외환위기 땐 위기의 근원이 동아시아 등 개도국에 있었고 선진국 경제는 튼튼했기에 곧 안정됐지만 이번엔 선진국 쪽에 탈이 생겨서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일단 살아야겠기에 직원들과 함께 이리 저리 뛰었고, 국내외 협력회사마다 돌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해 겨우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대통령이 친기업 정책을 편다기에 내심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씀하신 친기업은 ‘친(수출중심 대)기업’의 준말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회사는 내수중심 중소기업이었습니다.
정부가 ‘물가가 오르고 서민이 힘들어도 우선 수출이 잘돼야 해’ 하는 신념의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속상한 일도 많았지요. 그래도 기업인의 본분 중 하나가 ‘역경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주어진 환경에 몸을 맞춰 나갔습니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유럽 국가들이 휘청거린답니다. 지난번엔 개인이 감당 못할 빚을 져서 문제였는데 이번엔 국가가 감당 못할 빚을 져서 허덕인답니다. 이들을 그냥 죽게 놔두자니 물린 돈이 걱정되며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겠고, 돈을 줘 살리자니 더 물리게 생겼고… 부자 나라들도 고민이 많답니다. 이 와중에 그놈의 ‘소규모 개방경제’는 또 출렁거립니다.
이웃 일본은 사방에서 KO 펀치를 맞아도 자기 나라 돈값이 안 떨어져서 고민이라는데 한국은 뒤늦게 물가 잡겠다며 원화 값이 비싸져도 용인하겠다고 해도 또 떨어집니다. 한 달 사이 엔화 대비 10% 절하. 4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반값, 으∼.
그 중소기업인, 초심 되찾을까
그래도 회사가 내실을 좀 쌓아 두었기에 3년 전처럼 밤잠을 못 자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굳게 마음을 먹습니다.
“우리는 내수중심 중소기업이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내 살길은 내가 찾는다. 고용? 가능하면 쥐어짜라. 소비, 지출? 무조건 줄여! 세금? 최대한 절세다. 이익 나면 더 내마. 정부? 너희 맘대로 하세요. 제발 딴죽만 걸지 마세요.”
회사는 강해졌으며 직원들도 좀 더 유능하고 독해졌습니다. 그 덕분에 당장 생존걱정은 안 할 만큼은 됐지요. 하지만 기업인으로서의 다음과 같은 ‘초심’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슬슬 걱정이 됩니다.
“나는 기업인이다. 고용과 납세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다.”
(※이상은 기자 지인의 넋두리다. 그는 진단시약을 생산하고 수출입하는 꽤 탄탄한 중소기업체의 젊은 사장이다. 그의 양해를 얻어 여기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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