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 예술가 가운데 무용가 최승희(1911∼1969)만큼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1938년 미국 순회공연 때에는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존 스타인벡,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 로버트 테일러, 게리 쿠퍼 같은 저명인사들이 그의 춤에 매료돼 찬사를 보냈다. 1939년 유럽 순회공연에서도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 소설가 로맹 롤랑, 시인 장 콕토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다투어 관람했다. 피카소는 감격한 나머지 그에게 자신의 그림을 선물했다.
세계적 예술가 ‘엇나감’의 업보
그가 무대에 서는 날 극장 안에는 환호성과 박수가 넘쳤다. 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가 잇따랐고, 인기 광고 모델로 등장했다. 한국의 전통 무용을 현대화해 이른바 신(新)무용을 창시한 것도 그의 업적이었다. 그는 1930, 40년대 식민지 조선을 넘어 아시아 전역의 문화적 아이콘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우리 문화예술계에 그와 같은 명성을 누릴 스타 예술가는 드물 것이다.
지난달 24일은 최승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직도 많은 국민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세계적인 예술가’를 추모하거나 기념하는 행사들이 있을 법한데도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무용계 내부에서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심포지엄 등이 몇 차례 열렸을 뿐이다. 그의 고향인 강원 홍천에서 2006년부터 개최해온 ‘최승희 춤 축제’도 올해부터 중단됐다.
그의 ‘쓸쓸한 탄생 100주년’은 친일 월북 등 정치적 행보와 맞물려 있다. 일제강점 말기 전쟁 동원에 협조해 중국 일대에서 130여 차례 일본군 위문 공연을 가졌으며 1945년 광복도 베이징에서 위문공연을 하던 중에 맞았다. 1946년 5월 미군이 제공한 배를 타고 인천항을 통해 귀국한 그는 그해 7월 북한으로 향한다.
친일과 월북이라는 두 가지 선택에 대해 일부에서는 동정론도 나온다. 친일의 경우 당대의 톱스타로서 일제에 협력하지 않으면 공연 활동이 아예 불가능했으며 월북은 공산주의자였던 남편 안막이 북한으로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으로 간 이후의 행적을 보면 그가 ‘정치적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북한에 도착해 김일성의 융숭한 대접을 받은 그는 6·25전쟁 때 북한군을 상대로 위문 공연에 나섰고 남한에 대한 전쟁 의지를 고취하는 무용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북한행(行) 자체가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요즘 우리 문화예술계에서도 정치 참여와 발언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 문화계는 진보좌파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수와 중도 성향의 문화계 인사들도 꽤 있지만 목소리 큰 좌파 인사들이 전체 분위기를 압도해 다른 의견은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예능 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중문화를 포함한 문화예술의 역할과 비중이 급속히 확대됐다. 이들의 영향력은 어느새 중요한 사회 이슈에서 여론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만큼 커졌다.
문예인 정치참여 성찰의 거울
보수우파 세력들이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진보좌파 세력들은 문화예술 분야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문화계로 하여금 한 쪽 목소리만 내도록 만들어 놓은 것도 진보좌파의 ‘내공’이자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좌파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모든 정치권력들은 문화예술과 문화예술인들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에 이용당한 문화예술인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문화계 인사들은 요즘 진보 세력을 위한 정치 활동의 선봉에 서 있다. 선거에서 반(反)이명박 운동에 나서는 것은 기본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각종 이슈에서 좌파의 진영논리를 앞장서 대변하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한술 더 떠 다른 예술가들의 말과 행동을 막아서는 일에까지 나서고 있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피겨스타 김연아의 종합편성TV 출연에 대해 ‘연아 근데 안녕’이라며 편을 가르고, 가수 인순이의 종편 출연에 대해서도 ‘개념 없다’고 몰아세웠다. 비단 공 씨뿐이 아닐 것이다. 김연아 소속사 측이 서둘러 별도의 해명자료를 내야 했던 상황에서 문화계 전반에 비슷한 강압적 정서가 팽배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화와 정치는 어느 정도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제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무용계가 마련한 최승희 탄생 100주년 심포지엄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불세출의 천재 무용가 최승희가 정치적 이유 때문에 예술적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치적 예술가’ 최승희 자신도 북한의 내부 권력투쟁 과정에서 숙청당하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예술가는 결국 예술로 말하는 법이다. 최승희의 탄생 100년은 우리에게 ‘예술가의 길’을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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