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111>곤드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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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9일 03시 00분


화전민이 먹던 구황음식서 참살이식품으로

사람 팔자 모르는 것처럼 음식 팔자도 알 수 없다. 요즘 거리음식의 대부분은 옛날 지배층이 먹던 고급음식이었다. 반면 예전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할 수 없이 먹던 음식들이 지금은 참살이식품이라는 이름으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밥은 강원도 산골 오지마을에서 곡식이 떨어진 화전민들이 굶주림을 면하려고 먹던 음식이다. 쌀은 진작 떨어진 데다 감자 옥수수마저 바닥나면 산나물인 곤드레를 따다 밥에 넣어 양을 부풀려 먹었다. 민요인 정선아리랑에 당시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한치 뒷산은 강원 정선군 동면에 있는 산 이름이고 곤드레, 딱죽이는 산나물 이름이다. 거친 산나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과 같아서 맛있게만 먹는다면 흉년에도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곤드레밥이 별미고 참살이식품으로 인기가 높지만 예전 산골사람들에게는 춘궁기를 굶지 않고 살아 넘길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생명줄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곤드레밥은 쌀밥에다 곤드레나물을 넣은 후 양념장 등에 비벼 먹는다. 하지만 옛날 산골짜기 사람들이 춘궁기에 먹었던 진짜 곤드레밥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한다.

밥이 아니라 주로 곤드레나물에 콩나물을 잘게 잘라 섞어서 죽을 쑤어 먹었다. 그나마 곤드레나물마저 캐지 못하면 굶거나 다른 풀을 뜯어다 먹었는데 풀죽만 먹다 보니 부황이 들어 얼굴이 퉁퉁 붓는 등 고생을 했다.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화전민들이 먹었던 처절한 음식이 바로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밥 못지않은 음식이 또 있으니 도토리밥이다. 옛날 산간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가을이면 도토리를 따서 저장해 두었다가 겨울에 말린 도토리를 꺼내어 가루로 빻아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요즘 시각으로는 도토리로 묵을 만들면 맛도 좋고 허기도 메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배고픈 사람이 들으면 빵이 없으니 과자를 먹으라는 것과 비슷한 흰소리가 된다. 도토리를 빻아 묵을 만들면 양이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 그러니 긴긴 겨울과 춘궁기 배고픔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도토리를 방아에 찧어 가루로 만든 후 콩이나 옥수수 등과 섞어서 도토리밥을 지으면 양도 푸짐한 것이 먹으면 든든해서 충분히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었다.

없이 살던 시절에는 이렇게 밥에다 다양한 나물이나 채소를 섞은 나물밥을 먹었다. 실제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나물을 넣어 짓는 밥의 종류가 적지 않다. 지금은 잘 알려진 곤드레밥을 비롯해 콩나물밥 시래기밥 김치밥이 있고 무밥에 쑥밥도 있다. 영역을 넓혀 보면 채소나 나물뿐만 아니라 감자밥 고구마밥과 도토리밥에 칡밥도 있다. 절에서는 감밥과 감잎밥도 지어 먹었다.

각종 나물이나 채소, 열매를 넣고 짓는 이런 밥은 원래는 모자란 곡식을 대신해 양을 불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영양이 넘쳐 다이어트를 고민해야 하는 현대에는 대부분 별미가 됐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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