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맞벌이와 외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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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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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주부 L 씨는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초등학생 외동딸이 문이란 문은 죄다 꼭꼭 닫고 있는 까닭을 몰랐다. 몇 번을 얘기해도 그대로여서 하루는 좀 싫은 소리를 했더니 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털어놨다. “다른 건 꾹 참으면 되는데…거울에 내가 비친 걸 보면 뒤에서 누가 나올 것만 같아 너무 무서워.” 일하는 엄마가 걱정할까 봐 혼자 집 보는 게 무섭다는 내색 없이 제 방에 ‘감금’되기를 자청한 어린 딸에게 L 씨는 눈물겹도록 미안하고 고마웠다.

▷전문직 여성 Y 씨는 고교 1학년 아이가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는 동안 하루 3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한다. 요점 정리를 해주고 인터넷에서 예상 문제를 뽑아 같이 풀고 오답 노트도 거들어준다. 평소 수행평가용 과제물도 엄마 몫이다. Y 씨의 말이다. “요즘 대입 전형은 경우의 수가 3000가지가 넘는다는데 직장 다니면서 그 복잡한 대입 정보를 다 챙길 수 있나요? 내신이라도 잘 받으려면 제가 몸으로 때워야죠.” 외벌이 가정의 엄마는 자녀 교육에서 정보전을 치른다지만 맞벌이 엄마는 육탄전으로 맞서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현재 맞벌이 가구(507만 가구)는 외벌이 가구(491만 가구)보다 많다. 전체 결혼 가구 중 맞벌이는 43.6%, 외벌이는 42.3%다. 2009년의 맞벌이 비중은 40.1%였다. 가족 수가 많은 가구일수록 맞벌이 비율이 높고, 교육비가 많이 드는 40대(52.1%)와 50대(49.7%)의 맞벌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경제활동 인구가 증가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먹고살기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얘기도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5∼54세 여성층에서 가구주 이외의 취업자가 크게 늘었다’는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도 같은 맥락이다.

▷맞벌이는 많아졌지만 여성의 근로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여성의 상당수가 단시간 근로자로 취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평가절하할 일만은 아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가구 소득을 높이고 세금을 내 국가 경제를 키운다. 미국심리학회는 파트타임 일을 하는 주부의 행복도가 정규직 주부나 전업주부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돈을 벌면서도 자녀 교육 등에 적극 참여해 건강 상태도 좋고 우울증세도 적다는 것이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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