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주부 L 씨는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초등학생 외동딸이 문이란 문은 죄다 꼭꼭 닫고 있는 까닭을 몰랐다. 몇 번을 얘기해도 그대로여서 하루는 좀 싫은 소리를 했더니 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털어놨다. “다른 건 꾹 참으면 되는데…거울에 내가 비친 걸 보면 뒤에서 누가 나올 것만 같아 너무 무서워.” 일하는 엄마가 걱정할까 봐 혼자 집 보는 게 무섭다는 내색 없이 제 방에 ‘감금’되기를 자청한 어린 딸에게 L 씨는 눈물겹도록 미안하고 고마웠다.
▷전문직 여성 Y 씨는 고교 1학년 아이가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는 동안 하루 3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한다. 요점 정리를 해주고 인터넷에서 예상 문제를 뽑아 같이 풀고 오답 노트도 거들어준다. 평소 수행평가용 과제물도 엄마 몫이다. Y 씨의 말이다. “요즘 대입 전형은 경우의 수가 3000가지가 넘는다는데 직장 다니면서 그 복잡한 대입 정보를 다 챙길 수 있나요? 내신이라도 잘 받으려면 제가 몸으로 때워야죠.” 외벌이 가정의 엄마는 자녀 교육에서 정보전을 치른다지만 맞벌이 엄마는 육탄전으로 맞서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현재 맞벌이 가구(507만 가구)는 외벌이 가구(491만 가구)보다 많다. 전체 결혼 가구 중 맞벌이는 43.6%, 외벌이는 42.3%다. 2009년의 맞벌이 비중은 40.1%였다. 가족 수가 많은 가구일수록 맞벌이 비율이 높고, 교육비가 많이 드는 40대(52.1%)와 50대(49.7%)의 맞벌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경제활동 인구가 증가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먹고살기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얘기도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5∼54세 여성층에서 가구주 이외의 취업자가 크게 늘었다’는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도 같은 맥락이다.
▷맞벌이는 많아졌지만 여성의 근로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여성의 상당수가 단시간 근로자로 취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평가절하할 일만은 아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가구 소득을 높이고 세금을 내 국가 경제를 키운다. 미국심리학회는 파트타임 일을 하는 주부의 행복도가 정규직 주부나 전업주부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돈을 벌면서도 자녀 교육 등에 적극 참여해 건강 상태도 좋고 우울증세도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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