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종민]전문의 통해 안전한 마취 받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6일 03시 00분


박종민 대한마취과학회 이사장 가톨릭대 의대 교수
박종민 대한마취과학회 이사장 가톨릭대 의대 교수
최근 성형외과에서 시술받던 환자가 프로포폴 부작용으로 뇌 손상에 실명까지 돼 죽고 싶다고 말한 사연이 보도됐다. 재판부는 환자에게 5억여 원을 보상하라고 판결했다고 한다.

필자는 의사가 된 뒤 30년 넘게 마취를 해 왔지만 지금도 마취를 할 때면 긴장되고 떨린다. 마취는 환자를 절벽의 끝에 세워놓고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수술이 끝나 환자를 절벽에서 내려놓고 나서야 한숨을 돌리곤 한다. 흔히 마취는 한잠 자고 나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외과의가 수술할 동안 일어나는 여러 가지 위험한 상황을 감시하고 적절하게 처치해 수술이 안전하게 끝나도록 하는 역할을 마취과 의사가 한다.

마취과 의사들은 자신을 항공기 기장에 비유한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와 목적지에 착륙할 때가 가장 위험한 것도 마취와 닮았다. 마취도 유도할 때와 수술이 끝나고 깨울 때가 가장 위험하다. 마취과 의사는 외과 의사가 간단한 수술이니 잠깐만 안 아프게 해달라거나 위내시경 같은 간단한 검사를 해야 하니 잠깐만 재워 달라고 할 때 그 ‘잠깐’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비행기가 기류 변화를 덜 타고 흔들림이 없이 운항을 하기 위해 높은 고도로 나는 것과 비슷하다. 낮은 고도는 기류 변화가 심해 몹시 흔들리고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취도 잠깐 재워 달라거나 안 아프게 해 달라는 것은 마치 낮은 고도로 비행해 달라는 주문과 같다.

문제는 마취과 의사도 꺼리는 이런 위험한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응급처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마취과 의사도 아닌 외과의나 간호사가 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외과의들은 마취과 의사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다. 현재 마취과 전문의는 4000여 명이다. 일부 은퇴한 사람을 제외해도 3000명 이상이 의료현장에서 뛰고 있다. 그러면 그 많은 의사가 어디에 숨어 있는 건가? 문제는 마취수가에 있다. 마취료가 너무 싸 중소 병의원은 그 돈으로는 마취과 의사를 고용할 수 없다고 한다. 비교적 규모가 큰 병원이라야 수술이 많아 마취과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전국 3300여 병의원에서 한 해에 약 180만 건의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중 70% 정도에는 상근 마취과 의사가 없다.

이런 병원에서도 마취과 의사를 통해 안전한 마취를 받으려면 마취료를 올려주면 된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상 어려운 형편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다. 차등수가제다. 지금도 많은 시술이나 검사 진단 등에 차등수가제가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X선 사진 촬영의 경우 다른 과 의사가 찍으면 촬영료만 주고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판독한 경우 추가로 판독료까지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마취료의 경우 외과의가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해도 마취료와 함께 수술료도 전액 청구할 수 있다. 이를 조정해 마취과 의사가 마취한 경우만 마취료를 주거나 차등 지급한다면 남는 재정으로 마취료를 올려 환자가 안전하고 전문적인 마취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대안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박종민 대한마취과학회 이사장 가톨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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