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로저 코언]영국의 유럽통합 소극(笑劇)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6일 03시 00분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해협 너머 일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영국인들을 예전부터 늘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유럽연합(EU) 신재정협약에 대해 27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반대한 것도 맥이 닿아 있다고 본다. 이 협약은 EU를 지키기 위해 회원국 간 재정협력 강화와 제2의 그리스가 될 우려가 있는 나라들에 대해 좀 더 강한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인들의 가슴속에서는 대영제국 황금시대 전성기의 향수와 더불어 미국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나치시대 독일 공군에 맞서 싸웠던 자부심이 뛰고 있다. 현재 영국이 저항하는 상대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보수당도 이를 알아챘다. 캐머런 총리가 신재정협약을 반대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영국 내에서는 그 옛날 강인한 ‘불도그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많아졌다. 예전 제국주의 국가의 속성이다. 이러한 속성은 현실에 대한 적응을 최소화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는 충분한 준비나 협력자도 없이 잘못된 수를 뒀다. 그는 사실상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된 영국 금융산업 보호장치를 얻어내고자 노력했을 뿐 신재정협약 원칙에 그다지 반대한 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정치적으로 서툰 수였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대통령선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캐머런 총리와의 악수를 피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영국을 무시하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는 프랑스 선거판에서는 놓치기 아까운 득표 전략이기 때문이다.

닉 클레그 영국 부총리는 처음에는 불명확하게 중얼거렸으나 그나마 전략적인 사고에 접근한 인물이다. 클레그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은 캐머런의 보수당과 연정을 이루고 있다. 그는 캐머런의 불참 결정에 “대단히 실망했다”며 “영국이 EU에서 고립될 위험에 처했다”고 비판했다.

유럽통합 회의론자들에게 전략다운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단기적으로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전술이 있을 뿐이다. 냉전 종식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EU 회원국을 27개국으로 확대해 오는 과정에서 유럽통합을 심화할 필요성은 뒤로 밀려왔다. 이는 특히 영국 실정에 부합한다. 정치적 통합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국경이 사라진 유럽 시장에서 이익만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EU 위기는 공동 화폐에 정치적 힘을 실어주는 연방정부 차원의 업무 추진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영국인들이 지닌 양면가치를 노출시켰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말대로 밀물이 빠져나가야 비로소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 중심축을 아시아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서양 한가운데’는 영국에 쓸쓸한 자리가 될 수 있다. 영국 경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들에 매우 의존하고 있다.

지금 중요한 변화를 나타내는 분수령에 도달했다. 상황이 개선됐다. 제안된 신재정협약은 비록 늦게 승인을 받았지만 필연적이다. EU는 정치적 재정적 통합을 향해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러한 통합은 공통 화폐를 계속 존속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영국의 저항적 자유정신과 독립의지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진가가 입증된 미덕이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의 불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유럽통합 회의론은 과거의 영광을 가식적인 무대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위대한 영국에 대한 향수는 편협한 속물들이 모여 울부짖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봤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캐머런 총리가 영국 금융산업 보호장치가 마련돼야만 독일과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나 보수당의 한 의원이 “캐머런이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한 것이나 모두 웃음거리일 뿐이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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