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대통령의 결혼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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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9일 03시 00분


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19일은 이명박(MB) 대통령 부부의 41번째 결혼기념일이다. 대통령의 만 70세 생일이기도 하다. 기념일을 한꺼번에 치르는 게 좋겠다 싶어 생일날 결혼식을 올렸다니 MB는 타고난 실용주의자인 것 같다. 4년 전 오늘 김윤옥 여사는 MB를 찍은 1150만 명의 유권자와 함께 ‘대통령 당선’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해마다 이날이면 남편에게 나이 수만큼의 장미꽃을 받는다는 영부인이 오늘 아침에도 그 함박웃음을 지었을까.

처가의 비리는 더 치명적일 수도

김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제일저축은행에서 4억여 원의 금품 로비를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그는 대통령 부인의 남동생 김재정 씨가 작년에 작고한 뒤 사실상 집안을 대표했던 사람이다. 둘째 언니의 남편인 황태섭 씨도 2008년 제일저축은행 고문으로 위촉돼 고문료로 수억 원대를 받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수사 결과에 따라선 더 큰 권력형 비리로 번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셋째 언니의 남편은 2008년 말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이 지역유지들과 골프를 친 뒤 저녁을 먹는 자리에 동석해 연임 로비 의혹을 사기도 했다.

취임 1년도 안 됐던 2008년 여름 사촌언니 김옥희 씨가 30억 원대 공천청탁 사기혐의로 구속됐을 때만 해도 청와대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먼저 포착해 검찰에 이첩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올 5월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비리가 터졌을 때는 “그럼에도 친인척 비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해도 너무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민정에서 철저했기 때문”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오히려 역대 정부에선 집권 5년차쯤 터지던 친인척 비리가 현 정부에서 더 빨리 터져 ‘레임덕’을 재촉할 판이다.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 소지를 미리 차단하는 게 바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민정수석비서관실의 핵심 기능이자 존재 이유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말대로 ‘친인척 챙기기’가 인간본성이라면, 왜 우리나라는 정권마다 이 모양인지 절망스러워도 엄격한 제도와 법치로 끊임없이 고칠 수밖에 없다. 민정수석을 지낸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 권재진 법무장관, 그리고 민정1비서관을 지낸 장다사로 총무기획관은 당시 무얼 하고 있었는지, 그런데도 승진을 거듭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친인척 비리에 경중이 있을 리 없지만 ‘처가 비리’는 더 아프다. 막기는 더 힘든 반면 후폭풍은 대통령의 인기와 권위를 떨어뜨릴 만큼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부인 사랑이 지극하거나 처가에 신세를 진 적이 있을 경우 사정기관에서 “아니 되옵니다” 하기 어렵다는 건 능히 짐작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스리 허(許)’ 중 두 사람이 밀려난 건 이철희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에 강력한 대처를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비화는 유명하다. 장영자 씨의 형부가 전 전 대통령 부인의 삼촌이었다.

영부인이 할 수 있는 일 아직 많다

우리는 존경하는 대통령을 많이 갖지 못했어도 존경하는 대통령 부인은 많이 두었던 나라다. 4년 전 김 여사는 후덕한 이미지와 활달하고 소탈한 웃음으로 MB의 다소 날카로운 인상을 보완해줬다. 어떤 인상학 전문가는 “복을 타고난 얼굴이어서 MB가 대통령이 된 것도 부인 덕분”이라고 했을 정도다. MB는 박근혜 전 대표와 치열한 경선을 치를 때 이미 “아내가 낙천적이라 그 옆에 있으면 나도 걱정이 없어진다”며 부인이 ‘힘의 원천’임을 고백했다.

요즘은 그 후덕함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한국 패션과 미용의 우수성을 알리는 건 좋지만 너무 세련되게 변신한 나머지 어려운 국민을 보듬는 ‘어머니’ 이미지가 덜하다는 얘기가 나돈다. 대통령 부인의 힘을 활용해 여성문제나 소외된 계층문제에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김 여사는 얼마 전 전방의 한 부대를 방문해 아들같은 군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일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나라에 도움 되는 일이면 밀고 나가는 것이지 누가 욕한다고 신경 쓰면 아무 일도 못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되 “인터넷에서 뭐라 그러면 저는 무조건 패스(통과)다. 그거 들으면 괜히 병 날 텐데…”라고 한 건 지나쳤다.

“인터넷에서 뭐라 그러면 마음이 아프다. 일은 하더라도 국민의 마음을 살펴가며 하라고 전달한다”고 말하는 ‘연기’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의 사례를 연구한 케이티 마턴은 ‘숨은 권력자’라는 책에서 “대통령의 보완재 역할을 한 퍼스트레이디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했다.

김 여사는 1년만 지나면 자유인이 된다. 그러나 MB의 유산은 오래 간다. 공직 없이도 대통령과 가장 내밀하고 고독한 시간을 함께하면서 역사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대통령 부인이다. 누구도 못하지만 김 여사는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많다. 1년이면 아이도 잉태해 낳아 기를 만큼 긴 시간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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