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이 19일 낮 12시에 ‘중대보도’가 있을 예정이라고 보도했을 때 누구도 ‘김정일 사망’을 눈치 채지 못했다. 김정일 사망 후 발표까지 약 51시간이 흘렀건만 대북정보기관들도 감을 잡지 못했다. 북한의 폐쇄성과 철통 보안이 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북한은 예측도, 관리도 어려운 별종 국가다.
김정일 사망은 그 자체가 남과 북 모두에 급변사태나 다름없다. 김정일이 없는 북한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지금 단계에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갑작스러운 권력의 공백으로 예기치 못한 돌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김정은이 권력 장악과 내부 체제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무모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3대 세습에 실패해 독재 체제가 붕괴하면서 대규모 난민 사태가 발생하거나 국지전이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를 포함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김정일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 주재한 데 이어 비상국무회의도 열어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등 우방 및 주변국 정상들과 통화를 하고 긴밀한 외교적 협조를 당부했다. 정부를 거국 비상체제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북한 내부의 움직임과 후계체제 변화 추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동맹국인 미국과의 정보 공유 및 북의 급변사태 시 대응 공조체제를 확실하게 다져야 한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외교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북을 관리할 수 있는 중국과의 돈독한 외교 협조체제가 중요하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의 사망을 전하면서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을 발표하기 전인 어제 오전 동해상에서 단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도 했다.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필요할 경우 대남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정승조 합참의장과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이 긴급 회동한 결과 일단 북한군에 특이 동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대북 군사 정보활동과 방어태세는 최고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은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정략적 이해를 떠나 국익 차원에서 공동 대응할 책무가 있다. 이 대통령이 오늘 한나라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 등 3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어제 비상국무회의에서 “국론이 분열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야는 일단 모든 정쟁을 중지하고 비상사태라는 인식을 갖고 국민의 불안을 덜고 민생에 도움을 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조문을 놓고 불거졌던 ‘남남갈등’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야권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의 조문단 파견까지 주장하지만 천안함 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과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세계 경제위기가 만성화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동요와 혼란은 곧바로 우리 생활에 민감하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치안과 경제만큼은 전혀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국민과 기업, 시장은 경제가 위축되지 않도록 경제활동 정상화에 힘쓰고 외자(外資)가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결국 승리한다는 신념을 다질 필요가 있다. 제 국민의 인권을 억압하고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반인륜적 독재정권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올해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주의 혁명이 보여줬다. 김정일 사망 후 몇 개월 또는 몇 년은 한반도의 명운을 결정할 중요한 시기다.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이 갑작스럽게 이뤄진다 해도 결코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