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선태]법률구조공단 상담 창구를 통해 본 2011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3일 03시 00분


황선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황선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온갖 사건들이 이어졌던 2011년이 어느덧 저물어간다. 이맘때면 누구나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게 마련이다. 5000만 대한민국 국민과 126만 명을 넘는 외국인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땅에는 즐거운 일, 아쉬운 일, 어처구니없는 일, 억울한 일까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절절한 사연들이 얽혀 있을 터다. 올 한 해 동안 120만 건이 넘는 무료 법률상담과 13만 건의 민형사 소송을 대리해온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상담 창구에 투영된 우리 국민들의 삶은 한편으로는 고단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따뜻한 정으로 가득하다.

자손 하나 없이 쪽방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80대 할머니가 잘못된 호적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못 받는 어려움에 처하는가 하면, 부모를 잃고 외톨이로 남은 열네 살 고아 중학생이 할아버지가 남긴 빚 9000만 원을 떠안을 뻔한 사정도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몇 달 동안 힘들게 일했지만 사업자가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도주해 당장 생계가 막연해진 공사장 인부와 그 가족들, 그들의 사연이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고향을 떠나 수만리 이국땅에 둥지를 튼 어느 남방의 새색시는 땅 설고 물 선 타향살이에 지쳐 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출입 1조 달러를 달성하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올라선 대한민국의 성숙한 사회 시스템은 이들의 아픔과 괴로움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쪽방 할머니는 행정 착오로 사라진 호적을 되찾아 주려는 이웃들의 따뜻한 관심과 적절한 법률적 도움으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매달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수당 덕분에 부족하나마 생활의 안정도 찾았다. 부모 잃은 중학생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처럼 쏟아진 상속빚은 훈훈한 마음을 지닌 한 변호사의 수고 덕분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공사장 인부들은 무료 소송구조 과정에서 ‘본래 공사를 맡았던 원청회사에 임금 지급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가족들 앞에 가장의 체면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남방의 새색시는 그토록 원하던 한국 국적을 얻었고 호적도 만들었다. 발음하기 어려운 본래 이름 대신 예쁜 한국 이름도 갖게 됐다. 잃었던 미소를 되찾은 것은 물론이다.

이런 사례는 이 땅의 수많은 사연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법률적 구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접근하기가 어렵거나 절차를 알지 못해 당연한 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국민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전문 변호사를 비롯한 공단 직원 800여 명은 우리 사회가 훈훈해지기를 바라며 법률적 약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낮은 자세로 전화(국번없이 132) 상담과 전국 103개 사무소를 통한 면접 상담, 소송 대리를 적극 펼쳐 나가고자 한다.

2011년 세밑을 맞아 좀 더 세심한 관심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돼 법률 보호의 소외 지대가 없는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황선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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