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살 부른 ‘9개월 괴롭힘’ 어른들은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4일 03시 00분


미국 뉴저지 주는 올해 9월부터 학교마다 학생 폭력방지 전문가를 두고, 핫라인을 설치해 친구를 괴롭히는 학생을 경찰에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유치원생부터 6개 과정의 ‘친구 괴롭히지 않기’ 수업을 하고, 고교에선 친구를 괴롭히는 학생을 보면 못하게 할 책임이 있다는 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럿거스대 신입생이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자살하자 학교가 철저한 교육을 통해 똑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지는 ‘반(反)괴롭힘 법’을 도입했다.

같은 반 친구 두 명으로부터 9개월 동안이나 폭행과 돈 갈취에 시달리던 대구의 중학교 2학년 김모 군이 20일 목숨을 끊었다. 김 군은 유서에서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고 했고, 물로 고문하고, 단소로 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켰다”고 고발했다. 학교는 올해 3월 초부터 두 차례 교내폭력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고도 김 군의 사정을 몰랐다. 교사였던 김 군의 부모 역시 아들의 몸에 상처가 난 것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런 고통을 당하는 줄은 파악하지 못했다. 김 군이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유서를 쓰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어제 “감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교육청 측은 폭력과 괴롭힘 실태 파악을 위한 학생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신고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7월 ‘학교폭력전담 경찰관’ 배치와 학교별 경비인력 확대를 포함한 ‘학교폭력, 따돌림 근절 대책’을 내놨으나 김 군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 폭력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대상으로 상담교육을 하는 ‘위(Wee) 프로그램’을 만들어 두고도 예산을 깎는 판이다.

북유럽에서는 초등학교 교실에 ‘우리는 친구를 괴롭히지 않는다’ ‘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보고만 있지 않는다’는 표어를 써 붙이고 철저히 실천하도록 지도한다. 학급별 학교별 개인별로 예방교육을 실시하면 학교폭력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스웨덴은 2006년 한층 강화된 ‘반괴롭힘 법’을 시행했다. 학생 폭력을 엄격히 다루는 유럽과 미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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