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장에게 살해당한 이청호 경사의 영결식이 있던 14일, 중국 환추(環球)시보의 사설은 확실히 그동안의 논조와 달랐다.
‘…중국 어민들은 해적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고 있는 이들일 뿐이다. 중국은 강대한 나라지만 중국인은 보편적으로 한국인에 비해 가난하고 교육수준도 훨씬 떨어진다. 중국 어민에게 외교관처럼 예의를 갖추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자국 어민들이 처한 상황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은 듯한 논평이지만, 그게 실상(實相)의 전부는 아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자매지라 사실 보도의 DNA가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환추시보는 ‘중국 당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고 있다.
한국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대략 하루 1000여 척이고, 다수는 무허가다. 그리고 무허가의 절반가량은 배를 식별할 수 있는 이름이 없다. 번호판을 떼어내고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다. 번호판 없는 자동차가 그렇듯이, 우리가 아무리 불법 조업 증거를 수집해 중국 당국에 보내도 소용이 없다.
‘최전방’에서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을 감시하고 있는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지도선 무궁화 29호 김두원 선장(55), 19호 추경조 선장(52), 31호 김형배 선장(51), 33호 김명수 항해장(56)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배 이름을 지우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이름이 없는 배가 부지기수다”고 말했다.
선명(船名)이 없는 무허가 어선의 배후엔 중국 당국의 부패와 묵인이 있다.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중국 선장이 한국 돈다발을 꺼내 가지고 태연하게 조사팀에 들이대는 거예요. 처음엔 돈인 줄도 몰랐어요. 우리는 어이가 없었죠. 그런데 자기네들은 돈 주면 그냥 간다고, 우리도 그런 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국은 진짜 법을 지키는 나라인 것 같다고….”
전남 목포시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서해어업관리단의 강효정 씨(25)는 진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는 올해 10월 서해어업관리단의 새내기 어업감독 공무원으로 임용된 여성 3인방 중 한 명이다. 여성이 3명이나 들어온 건 전례 없는 일. 게다가 그녀는 다른 두 사람과 달리 부산 출신이다.
부산 출신의 앳된 여성이 목포에, 그것도 여성 터부(taboo)가 생태계처럼 자리 잡고 있는 ‘뱃일’에 뛰어들었으니 뉴스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3일 목포에 내려가 직접 만나 보니 그런 생각이야말로 ‘꼰대’ 같은 것이었다.
―부산에 있는 국립 부경대를 졸업했다고 들었다. 예전엔 국립 수산대 아니었나.
“예, 사실 성적도 모자랐지만 처음엔 해양대학을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물론 친가, 외가 모두 나서서 ‘여자가 왜 배를 타려고 하느냐’며 반대했어요. 차라리 부경대를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경대 해양생산학과에 입학했는데 그것도 전과를 하라고, 모두들 거기 나와서 뭐하겠느냐고 했어요. 하지만 수산 쪽에서는 부경대가 인정을 받고 메리트가 있었어요. 연고대 아닌 다음에야 여기서 내 역량을 키우면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새내기로 임용된 여성이 3명이던데….
“직렬로 보면 어로직렬 4명, 선박항해직렬 3명을 새로 뽑았는데 어로직 1명과 선박항해직 2명에 여성이 임용됐어요. 저는 선박항해직이에요. 다른 남자 분들은 승선 경력이 많은데 우리는 학교에서 실습선을 타본 정도여서 3개월가량 업무를 익힌 뒤 구체적인 업무가 정해질 것 같아요.”
―정말 배를 타길 원하나.
“우리 3명 다 원해요. 단장님은 우리가 합격한 뒤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다른 분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는 꼭 보내 달라고 했어요.”
―당초엔 해양대를 가려고 했다는데, 집안에 배 타는 가족이 있나.
“제가 어릴 때 아빠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서 통신장을 하셨어요. 아빠가 돌아오실 때 마중 나가는 것도 좋았고, 아빠 얘기를 들으면서 바다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로망 같은 게 생겼어요. 아빠는 ‘오빠가 하면 했지 너는 아니다’라면서도 제가 어릴 때는 그렇게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제가 막상 한다니까…(웃음).”
―그동안 중국 어선 단속 업무에 두 번 나갔다고 하던데 선장들의 반응은 어땠나? 김형배 선장은 강효정 씨 덕분에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하던데….
“그렇게 반대하시지 않았어요. 여성이 처음이니까 환영하는 쪽도 있고, 여자들이 굳이 배를 타야겠느냐고 반대하시는 쪽도 있었지만…. 선장님이 좋게 봐주신 거죠. 식사 시간 때도 도와드렸는데 저보고 식사시간 알리는 방송을 해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시키면 다 하거든요(웃음). 근데 제가 방송을 하니까 당직 서신 분까지 와서 밥을 드셨어요. 보통 당직하면 식사 건너뛰고 주무시는데…. 녹음까지 해주고 왔는데 지금도 식사시간엔 그걸 튼다고 하시더라고요. 사건 조사할 때는 여자라서 그런지 중국 선장들이 잘 응해주기도 했어요. 십지문(열손가락 지문) 찍는 것부터 배웠는데 제가 찍어달라고 하니까 중국 선장님이 그냥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조사를 다 한 뒤 십지문을 찍으라고 하면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요.”
―아직 맛보기의 맛보기도 안 되겠지만 실제 단속을 나가보니 어땠나.
“어리벙벙하죠. 11월 초에 첫 출항을 했는데 보통 출항하면 8, 9일이 걸려요. 출항 둘째 날인가, 흑산도 서쪽 EEZ였어요.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트에 옮겨 탔는데 너무 떨리고 초조하고 긴장됐어요. 그런데 정작 보트를 타고 중국 어선이 있는 곳으로 2, 3마일 가는 동안엔 아무런 생각도 안 났어요.”
―지도선 모선(母船)에 남아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선장님은 그냥 배(모선)에서 보라고만 하셨는데 제가 그냥 타버렸어요. 두 번째 나갈 때는 날씨가 궂었는데 심야에 200여 척이 모여 있었어요. 레이더상에는 점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서 표시돼요. 날씨가 안 좋으면 단속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불법 조업을 더 하거든요. 그때는 또 모두가 단속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선장님이 저더러 남아서 타(舵·배의 조타장치)를 잡으라고 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중국 배가 철조망까지 치고 저항했다고 하더라고요.”
―조타수를 했다고?
“타는 잡을 줄 알죠. 해기사 면허가 있는데…. 학교에서 실습할 때 요즘은 안 쓰지만 천문항법이라든지 레이더 보기, 해도(海圖) 작도법, 육분의 망원경도 다 배웁니다.”
―목포에 내려와서 나포돼온 중국 어선을 봤는데, 배의 몰골도 몰골이지만 선실이 마치 사진으로나 보던 6·25전쟁 때 피란민 움막보다 못한 것 같았다. 나 같으면 1분 1초도 못 있겠더라. 하지만 일단 불법 조업이 확인되면 우리 단속 공무원들이 중국 어선에 옮겨 타서 목포까지 끌고 와야 되는 것 아닌가.
“중국 어선을 끌고 오는 데 보통 10시간쯤 걸립니다. 게다가 해경과 달리 저희들은 비무장이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죠. 제가 해야 할 일이 단속업무만은 아니겠지만 여자라고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선장을 우리 배로 연행한 다음 막상 중국 어선에 올라가 보면 딱히 반항을 안 합니다. 또 중국 어선은 보니까 선장 외에는 항해술을 가진 선원이 없더라고요. 우리가 없으면 배를 조종하지 못하는 거죠.”
―단속 나갈 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 텐데….
“제발 아무도 안 다쳤으면 좋겠다, 사고만 안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저 선박이 제발 불법 어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그 생각밖에 없어요. 그런데 나갈 때마다 불법이었어요. 정말 속상하죠. 잡아놓고 선원들 얘기 들어보면 안 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배를 타는 것이고 돈 버는 사람들은 따로 있잖아요. 자기들도 그러더라고요.”
서해어업관리단이 작년에 단속한 중국 어선이 60척. 올해는 지금까지 170척이 넘는다. 연말까지 하면 작년의 3배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조리사까지 단속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선장들 말로는 올해가 유독 심하다고 하지만 중국의 수산물 소비 폭증, 연안 어족자원 고갈 등을 생각하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외교적으로 해결책을 찾는다고 하지만 현실은 또 다를 수밖에 없다. 살면서 혹시 후회하지 않을까.
“저는 괜찮은데 계속 이런 식으로 불법이 많아지면 (단속하는 공무원들보다) 우리 어민들이 고생하니까…. 우리 어민들이 물고기들의 길목을 지키고 그물을 내리면 중국 어선들이 바로 그 앞에서 그물을 쳐버리거든요. 또 중국 선장들은 무지막지하게 배를 몰아요. 우리 어선들이 쳐놓은 그물을 피해가지 않고 그냥 쓸고 지나가버려요. 단속 업무도 많아지겠지만 우리 어민들의 피해가 늘어나겠죠. 그게 안타깝죠.”
―결혼도 해야 할 텐데 부산에 본부를 두고 있는 동해어업관리단으로 옮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저는 전혀 생각이 없어요. (정색을 하고 말을 또박또박 끊으면서) 동해엔 중국 어선이 드물죠. 물론 일본에서 (불법 어선이) 오는 경우는 더 드물죠. 저희처럼 급박한 상황이 ‘정∼말’ 드물죠. 제가 집이 부산이니까 여기 계시는 분들도 ‘너 조금 있으면 동해로 갈 거잖아?’라고 그래요. 근무한 지 겨우 몇 달밖에 안 되지만 잠깐 보니까 여기가 일이 더 많고, 더 많이 배울 수 있지 않냐는 생각을 해요. 6, 7년 사귀고 있는 학교 선배가 있지만 결혼도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일에 집중을 못할 것 같고, 또 아기라도 생기면 승선할 수도 없잖아요?”
―혹시 선장이 되고 싶은 건가.
“친구들도 ‘야, 네가 무슨 배를 탄다고 그러냐. 적당히 하다 육상 근무로 바꿔라. 공무원이 잘릴 일도 없는데…’라고 해요. 아빠도 배 안 타는 다른 쪽이 어떠냐고 하고요. 하지만 저는 배가 타고 싶어서 여기 온 겁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라면서 ‘그럼 최초의 여자 선장에 도전해 봐라’고 하시더라고요. 해보겠다고 했죠.”
―요즘 홍보일도 맡고 있던데….
“제가 홍보일은 배운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국민들이 저희 어업관리단 자체를 잘 몰라요. 단속은 무조건 해경이 하는 줄 알죠. 여기 목포시민들도 잘 모르시더라고요. 또 지금 중국 어선이 난리인데 기름이 없어서 단속을 못 나갈 정도니까 답답하죠.”
인터뷰를 하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기름이 없어 단속을 못 나간다니!
―무슨 말인가. 누가 들으면 북한 얘기 하는 줄 알겠다.
“원래 예산이 부족한 건지, 올해 단속 횟수가 급증해서 그런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여하튼 두 번 나갈 걸 한 번으로 줄이는 식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지금 한창 단속 나가야 할 시기인데 왜 저렇지 하고 궁금해하고 있어요.”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 서해어업관리단 ::
농림수산식품부 산하로 원래는 동해어업지도사무소뿐이었으나 2000년 한중 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2004년 신설됐다. 올해 6월 ‘어업관리단’으로 격상됐다. 해경과 함께 연근해 불법어업과 배타적경제수역(EEZ) 관리 및 단속업무를 맡고 있다. 관할은 서해 NLL 남쪽∼제주도 서쪽 해역. 우리 연안으로 보면 전남 고흥 서쪽 바다는 서해관리단이, 동쪽은 동해관리단이 각각 관할한다. 어업지도선이 15척 있으나 1000t 이상은 2척뿐이다. 감독인원이 부족해 7척씩 2교대로 연간 170일을 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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