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는 北이 안 변해도 대북정책 바꿀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6일 03시 00분


북한이 핵 무장과 남한에 대한 도발로 이어진 선군(先軍)정치를 이어갈 것임을 드러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일 사망 일주일 만인 24일 ‘김정은 동지를 최고사령관으로 부르며 선군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대장 계급을 부여받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자리에 오른 김정은이 조만간 최고사령관에 오른다는 예고로 보인다. 김정일도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통치를 시작했다.

어제 김정은과 함께 김정일 빈소를 찾은 고모부 장성택이 처음으로 대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고 나타난 것도 의미심장하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는 지난해 대장이 됐다. 최고사령관인 29세 조카 김정은을 부부 대장인 고모와 고모부가 보호하는 형국이다. 군대에 간 적이 없는 세 사람이 선군정치를 위해 대장으로 급조(急造)된 것이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앞세워 대남 도발을 했고 핵과 미사일 개발 등 무력증강에 나섰다. 김정은이 선군정치를 답습한다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선군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불안할 정도로 안이하게 느껴진다. 정부는 20일 “북한 주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면서 “북한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이런 조치는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 사회가 안정되면 남북관계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판에 유연한 대응만 강조하면 정부가 발목을 잡힐 우려가 있다. 천안함 연평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조차 없는데 이 대통령이 스스로 지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국내외에 비칠 수 있다.

정부는 북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 사망을 51시간 30분 동안이나 몰랐던 것에 대해 이 대통령은 “우리의 정보력이 걱정할 만큼 그렇게 취약하지 않다”며 태연한 태도를 보였다. 이 대통령이 “김정일 사망을 북한 발표를 보고 알았지만 우리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도 몰랐다”고 한 것은 국가정보원장을 감싸는 말로 들린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바로 우리 발등의 문제다. 다른 나라도 몰랐으니 우리가 몰라도 된다는 자기 합리화는 국정 최고책임자가 할 말이 못 된다.

북한은 어제 조평통을 통해 “남조선 각계각층의 조문방문길을 막아나서는 자들은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특대형 범죄자로 낙인하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만 경각심을 풀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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