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훈]연봉 1억 원 넘는데도 하층민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6일 03시 00분


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최근 사회풍자 유머로 인기몰이 중인 개그맨 최효종이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에서 ‘행복 전도사’로 나와 이런 멘트를 날린 적이 있다. “소박하게 연봉 10억 원이면 행복한 거예요. 다들 연봉 10억 원은 벌잖아요? 그 정도도 못 버는 사람은 아주 조∼금 불행한 거예요∼.”

최효종이 행복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탓일까, 웬만해선 만족할 줄 모르는 우리 민족성 때문일까, 대한민국 국민의 계층인식 수준은 놀라웠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 600만 원 이상 가구주 중 5.2%는 자신을 하층민이라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상류층이라고 답한 비율은 18.4%에 불과했고, 76.4%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응답자 대부분이 실소득 기준으로 설문에 답하기 때문에 월소득 600만 원 이상이라고 하면 실제로는 연봉 1억 원 이상”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의 소득신고로 계산했을 때 연봉 1억 원 이상 소득자는 전국 28만 명(상위 1.84%)에 불과할 정도로 소수지만, 정작 이들은 자신의 계층 수준을 매우 ‘각박하게’ 매긴 것이다.

이들의 소득 만족도 역시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월평균 소득 600만 원 이상 가구 중 자신의 소득에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7.2%에 그친 반면 20.8%는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했다.

소득 만족도가 ‘보통’이라고 한 600만 원 이상 소득자 비율은 43.4%였는데, 이는 300만∼400만 원 소득자가 ‘보통’이라고 한 비율(45.9%)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최소 생활을 하는데 돈이 모자란다’고 응답한 비율도 5.7%나 됐다. 평범한 샐러리맨이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응답이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물가가 너무 올라서 고소득자의 씀씀이가 줄었을 수도 있다. 최효종 말대로라면 ‘강남에 집 한 채 사려면 30년 동안 숨만 쉬며 월급을 모으면 되는’ 사회에서 연봉이 1억 원이라고 떵떵거리기엔 어딘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상위 1% 소득자가 자신을 중산층 이하라고 생각하는 사회, 연봉 1억 원 소득자가 벌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는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다.

유난히 인색한 우리의 기부문화도 결국은 자신의 벌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끝없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건 분명하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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