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고속道 추돌 공포’ 언제까지 지켜만 볼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3시 00분


지명훈 사회부 기자
지명훈 사회부 기자
24일 오전 10시 54분경 충남 논산시 연무읍 천안논산고속도로 하행선 203km(순천 기점) 지점. 가족과 함께 부모님 집에 가던 이모 씨(49)는 연무 나들목을 900m가량 지난 이곳에서 사고를 당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사고로 멈춰 선 앞차를 발견하고 급제동해 멈췄지만 뒤에서 오던 차에 들이받혔다. 상황을 살피러 밖으로 나오던 그는 다시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5t 트럭이 질주하듯 안개 속을 달려와 옆 차로에 서 있던 트럭을 들이받은 것이다. 이후에도 10분가량 후방에서는 “쿵, 쿵” 소리와 함께 아찔한 사고가 이어졌다.

84건의 추돌로 이어진 이날 사고는 하행선 199km 지점에서 오전 10시 10분 발생했다. 고속도로순찰대(경찰)와 천안논산고속도로(고속도로 관리회사) 측은 20분 뒤 현장에 도착했지만 사고 행렬 앞부분의 수습에 매달려 4km가량 떨어진 후방 쪽 통제는 1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그사이 추돌은 이어졌고 후방의 피해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천안논산고속도로 관계자는 “짙은 안개 때문에 폐쇄회로(CC)TV에서도 상황 파악이 안 됐다”고 말했다. 고속도로순찰대 관계자는 “후방 통제는 고속도로 관리회사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이 씨 주변에서 비슷한 시간에 사고를 당한 최모 씨(48·대기업 근무)는 “이번 사고는 인재(人災)”라며 흥분했다. 오전 9시 반쯤 경기 안성시 부근에서 안개를 처음 만나 서행했지만 사고를 당하기까지 순찰차나 경광등 차량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우회 유도 조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중국에서 근무했다는 최 씨는 “중국도 안개가 짙으면 고속도로 통제부터 철저히 해 사고에 대비하는데 우린 뭐 하는 거냐”고 했다.

이 씨는 “오전 11시 36분 점심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던 친구들에게 ‘사고가 나 갈 수 없다’고 전화한 뒤에야 경찰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며 “경찰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하여 당국의 허술한 사고 대응에 대해 집단으로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다.

사고 지점의 안개와 잔해는 걷혔지만 악몽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사고가 천재(天災)의 측면이 있지만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추돌 공포에 시달린 피해자들을 감안하면 경찰과 고속도로 관리회사가 허술하게 대응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인재성 대형 추돌사고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 피해자들의 분노의 소리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길 바란다.

지명훈 사회부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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