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8년 뇌중풍(뇌졸중)을 앓은 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됐다. 셋째 아들 정은이 후계 준비를 시작한 게 그 이듬해다. 김 위원장이 아들에게 남긴 유산은 두 차례의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 농축 우라늄, 108만 명 대군, 강력한 ‘선군 정치’ 체제, 그리고 기아선상에 놓인 약 650만 명의 주민(세계식량계획 보고) 등이다.
김정은이 맞이한 환경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김정일이 권력을 잡았을 때보다 더 열악하다. 김정은은 핵무기를 싣고 망망대해로 출항한 작은 배의 선장이나 다름없다. 이 배에는 세뇌된 군인들도 있지만 밥을 떠먹여 줘야 하는 인민들도 있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북한이 겪을 변화는 이들 유산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외부의 충격으로 규정될 것이다. 가장 먼저 예상할 수 있는 변화는 북한 정권 내부의 권력다툼이다. 김정일 이후 북한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로서 권력을 이양받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김정은 배후의 권력층이 단결할 수 있느냐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북한 내부 정치집단들은 모두 김 위원장 장례와 추모 활동 등에 주력할 것이다. 하지만 2, 3개월 지나면 북한의 새 정부는 내치와 외치 각 부문에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김 위원장의 유지를 받드는 유훈통치가 당분간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통치 방식과 정책을 통해 국민들을 하나의 가치로 결속시킬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세력 간 권력쟁투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각각의 정치세력은 개방과 쇄국, 개혁과 수구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이런 일들을 겪었다. 하지만 반대파에 대한 숙청 작업을 통해 오히려 권력을 공고히 해왔다. 그러나 20대의 김정은이 파워게임을 주도적으로 풀어낼지는 미지수다.
고질적인 식량난과 새 정부의 경제운용 능력 부족도 중요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당장은 북한 군인과 인민들이 김 위원장 서거의 슬픔에 잠겨 있기 때문에 가시적인 사회 혼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 봄이 되면 춘궁기가 닥쳐온다. 식량난이 극심해질 것이다. 여기에 지도부 내 권력다툼이 심화되고, 군인들이 새 정부에 불만을 갖게 되는 등 제반 요인이 엉키면 북한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핵 문제를 풀지 못하고, 개혁개방을 거부한 채 안으로 움츠러든다면 먹고사는 문제는 더 악화된다. 이는 곧 사회의 불안정성을 자극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들 수 있다. 김정은 정부는 선대 정부와 달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군사행위를 취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제 막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김 위원장 장례 이후 민심 확보, 사회 안정 등 현안을 처리하기도 벅차다. 이 때문에 현재로선 아버지와 달리 한국을 상대로 도발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처럼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역으로 휴전선 인근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소규모 교전이 대규모 군사행동으로 비화할 수 있다. 위기관리 능력이 취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한국 정부도 매우 예민해져 있어 남북한 양측의 신중한 한반도 정세 관리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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