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세영]MB, 후진타오와 배짱 외교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30일 03시 00분


안세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세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19세기 말 러시아 세력이 신장(新疆)으로 몰려오고 일본과 서구 열강이 조선으로 손을 뻗치며 티베트가 위태로울 때 청나라 조정은 긴급 어전회의를 했다. 제국이 노쇠해 세 속국을 모두 지키기에는 힘이 부치니 어느 한곳으로 군사력을 모으냐는 것이다. 결론은 당연히 조선이었고 위안스카이가 이끄는 4000명의 청병(淸兵)을 파견한다.

당시 서구 열강이 한양에 공사관을 개설했건만 청은 ‘내 속국에 무슨 놈의 외교공관이냐’ 하며 다스리는 부서라는 뜻의 이사부(理事府)를 설치하였다. 다른 나라 공사들은 고종을 알현할 때 대궐 문에 이르면 가마에서 내려 걸었건만 위안스카이는 가마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며 궁으로 들어갔다. 이 같은 시대착오적 중화주의에 바탕을 둔 조선에 대한 영토적 집착은 결국 일본 파병의 빌미를 주었고 신흥 일본에 흠뻑 두들겨 맞은 대청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과거의 굴욕을 딛고 재기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는 그들의 역사상 제일 넓다. 신장, 티베트는 물론이고 한때 한족(漢族) 위에 군림하던 만주, 내몽골이 모두 자국 영토가 됐는데도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도 베트남 등 12개국과 끊임없는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한때는 인도와 국경전쟁도 치렀지만 요즘은 신장을 겨냥한 서북(西北)공정, 티베트를 다룬 서남(西南)공정 등 좀 더 세련된 역사적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중국 ‘고구려 땅 북한’ 영토적 미련

물론 한반도는 동북(東北)공정으로 두 나라 역사학자들 사이에 열기가 뜨겁다. 우리의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세력인 현토군(郡) 고구려현(縣)에 불과하다. 고구려의 말발굽이 평양에서 만주까지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만주는 당연히 자기 것이고 지금의 북한까지 중국 땅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참으로 무서운 역사적 인식에 바탕을 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집요한 영토적 미련(!)이다.

김정일이 사라진 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 묘한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우리 대통령과의 통화는 사양하며 평양의 권력세습에 대한 신속하고 확고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26일 방중한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양국 관계를 경색시켰던 댜오위다오 섬 충돌은 뒤로하고 사이좋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했다. 평화와 안정이라는 말이 원체 좋은 뜻이라 그럴듯해 보이지만 신(新)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지 못하면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 어쩌면 중국은 앞으로도 평양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 없이 그저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 북한이 미국에 대한 완충국가 역할을 해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정말 미묘한 시점에 이명박 대통령이 다음 달 중국을 간다. 우연의 일치인지 북한 사태 후 한일 두 정상이 차례로 베이징을 찾아가는 게 찜찜하기는 하지만 이번에 꼭 챙겨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대통령 스스로 앞서 말한 한중 관계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인식을 갖고 후 주석을 만나야 한다. 북한에 대한 그들의 숨은 속내를 알면 그간 중국이 북핵, 연평도 사태 등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평양의 권력세습을 왜 그렇게 지지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상당 부분 풀리고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것이 한중 두 나라의 국익에 부합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를 반드시 형성해야 한다. 우리의 통일이 결코 중국에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득이 되며 중국을 세계에서 존경받는 패권국가로 만드는 길이란 점을 끈기 있게 베이징 지도자들의 머릿속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

北 개혁개방이 한중 국익에 부합

지금 베이징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일본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등으로 미국과의 헤게모니 게임에 밀리며 내심 긴장하고 있다. 이럴 때 한중 FTA 협상 카드를 내밀면 상당한 전략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웃음으로 한미 우호를 다지는 방미 때와는 다른 의연한 태도로 후 주석을 만나야 한다. 미소 짓는 노다 총리를 덤덤하고 무표정한 태도로 맞는 중화대국 후 주석의 모습을 보면 어쩐지 사진 한 장의 심리전에서 일본이 중국에 말려들어 간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대통령이 외교부가 건네주는 자료에 매달려 한중일 FTA같이 그저 그런 이야기나 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역사적 통찰력을 가지고 후 주석과 배짱(!)외교를 하여 신북한 시대 한중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멋진 정상회담을 하길 기대한다.

안세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syah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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