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따돌림과 학교 폭력으로 인한 학생들의 잇단 자살이 세밑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특히 대구 중학생의 고통이 유서로 전해지면서 죽음을 부르는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학교와 청소년계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학교 폭력은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 학생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다.
청소년기 또래들 사이의 폭력은 청소년들의 전 생애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청소년들은 또래와의 관계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사랑하는 방법도, 다투는 방법도 배운다. 이 시기에 발전시킨 우정을 나누는 능력은 어른이 돼 이성과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의 기반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또래로부터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 받기도 한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또래 관계는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집단 괴롭힘 같은 또래 폭력으로 인한 청소년들의 잇단 자살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지만 정작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학교 폭력이나 자살 등 극단적인 부적응 행동을 증가시키는 우리의 현실이다. 남보다 우수한 성적의 ‘이기는 교육’과 개혁에 지쳐있는 교사들은 제자들을 잃어버리고, 뒤처짐에 대해 병적 수준의 불안과 초조감을 유전인자처럼 물려받은 우리 부모들도 바빠진 일상에서 자녀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과도한 경쟁시스템은 청소년들에게 강도 높은 스트레스와 좌절의 고통을 안겨주고, 청소년들은 소통과 위로의 통로를 잃어버린 채 학교 폭력과 무기력 같은 문제행동을 양산하고 있다.
더는 불쌍한 아이들을 우리 가슴에 묻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청소년들에게 경쟁이 전혀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기는 힘들다. 경쟁이 불가피한 세상에서 청소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누군가의 존재다.
먼저 부모는 자녀들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가르치기 전에 자녀를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내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알려는 노력이 우선이다. 자녀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것만큼 필요한 부모의 역할도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이해하고 자녀와 소통하는 것인지 모르는 부모는 배워야 한다.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소통이 잘 안 되는 부모도 더 좋은 방법을 배워야 한다. 최근 부모 역할을 배우려는 젊은 부모들이 늘고 있어 다행스럽다. 또한 성적과 순위에 집착하기보다 자녀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제공하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도 가정의 부모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내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알고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업무가 많은 선생님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당국은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방법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그럴 수 있는 학교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또 선생님이 학생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노력도 해야 한다. 권위와 존경을 잃은 선생님들에게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선생님들 역시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사회 안전망이 여성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자는 한국청소년상담원과 청소년상담센터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CYS-Net(지역사회 중심 위기청소년 통합지원체계)이며, 후자는 교육청 중심의 위센터(Wee Center) 등으로 구성된 위 프로젝트(Wee Project)다. 위기의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긴급 상담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노력하고 있으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정과 청소년들에 비해 인력과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 이런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는 노력도 절실하다. 청소년들도 힘들고 어려울 때 이들과 의논하는 용기를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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