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을 들며/박동수]햇살에 기대어 바람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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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5일 03시 00분


박동수 전주대 교수·수필가
박동수 전주대 교수·수필가
햇살이 따듯하다. 나는 지금 따뜻한 햇살을 받으면서 호수 둘레로 길게 쭉 펼쳐진 덱을 걷는다. 봄 여름 가을에는 꽃들로 풍성한 호수 주변의 꽃밭들이었는데 지금은 텅 비어 있다. 나무들도 잎새를 다 떨어내고 나목으로 춥게 서 있다. 이렇게 겨울은 우리에게서 무엇인가를 앗아가는가 보다. 한겨울 속에서 봄 여름 가을을 생각하니 참 세월이 빨리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한 해를 보냈는데 벌써 또 새해를 맞은 지도 며칠이 지나버렸다. 지난해는 참 별로 이룬 것 없이 보낸 한 해였다. 올해는 정말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

호수에 잔잔한 바람이 인다. 청둥오리 떼들이 헤엄치며 다닌다. 이런 움직이는 것들이 호수를 텅 비어 있는 것으로 느끼지 않게 만든다. 바람이 호수를 살아있게 만들고 있다. 이런 바람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모든 감각을 일깨워 주고 살아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따뜻한 햇살과 감각을 일깨워 주는 바람이 있어야 한다. 햇살과 바람과 어우러지는 삶은 생기를 잃지 않는 삶이다. 나는 햇살에 기대어 바람에 기대어 생기를 잃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들을 그리워하면서 살고 싶다. 아니 중요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

오늘은 겨울 날씨 치고는 유난히 따듯하다. 그 따뜻한 햇살 속에서 나는 감각을 일깨워 주는 바람을 맞으며 생기가 살아나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새해를 맞아 새로운 다짐을 한다. 이제 너무 바쁘게만, 세속적으로만 살지 말자. 올해는 중요한 것들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할 것들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가자.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들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한결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지난해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 사회의 1%는 좋았고, 99%는 절망과 좌절, 그리고 소외 속에서 사는 세상이 더욱 심화되었던 한 해였다. 세계적으로 부를 쌓으면서 의무를 지키지 않는 1%에게 “나는 99%에 속하는 사람이다(I am the 99%)”라고 외쳤던 한 해였다. 이제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따뜻한 햇살이 고루 많은 사람에게 퍼지게 하고 잔잔한 바람이 많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람에게 온기를 주는 따듯한 햇살이 필요하다. 우리를 일깨워 주는 바람도 필요하다. 호수를 가만히 흔들어 놓는 바람, 동면의 대지 위에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바람, 아! 적당히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바람이 필요하다.

누구나 햇살에 기대어 바람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온기와 포근함을 주는 햇살과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잔잔한 바람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나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올 한 해 포근한 온기와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햇살에 기대어 바람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박동수 전주대 교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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