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은 타계하기 5년 전인 2006년 12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라꼴이 이게 뭐냐”며 우리 경제 현실에 강한 위기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경북 포항시의 포스코 영빈관(백록대)을 찾아가 15시간 넘게 기다린 두 명의 젊은 기자를 만나 기업인을 포함한 국민의 사기 저하, 미국 일본 등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 악화, 리더의 자질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3년 4개월 만의 공식 언론 인터뷰에서 나온 박태준의 발언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일만의 기적 일궈낸 ‘기업 영웅’
“주변 국가들은 다 경제가 좋은데 한국 경제만 활력을 잃어가고 있어. 침체에 빠진 경제를 생각하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경제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하는데 이제 국민소득 1만 달러 갓 넘었는데 드러누워 있을 때요?” 그는 포항 및 광양제철소 건설 일화를 소개하면서 국가 및 기업 리더의 비전과 열정, 책임감과 ‘중심 잡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추위 속의 ‘뻗치기’ 끝에 그를 인터뷰했던 김창원 기자(현 도쿄특파원)는 그젯밤 필자와의 통화에서 “연세도 많은 분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한민국이 잘돼야 한다’는 애국심과 나라걱정이 넘쳐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라고 전했다.
삼성과 현대그룹 창업자인 이병철과 정주영에 이어 박태준이 작년 12월 세상을 떠나면서 산업화 1세대 ‘기업 영웅’ 세 명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신화(神話)가 빛을 잃은 시대지만 그가 창설 멤버들과 함께 영일만의 허허벌판에 이룩한 포스코의 기적과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우국충정은 우리의 뇌리에 오래 남을 것이다.
박태준이 작고하고 영결식 날까지 닷새 동안 일반 시민을 포함해 각계 조문객 8만7000여 명이 서울 포항 광양 등 전국 9곳의 분향소를 찾았다. 우리 사회는 “세종대왕이 다시 와도 두 손을 들고 떠날지 모른다”라는 자조적 농담까지 나올 만큼 갈등과 반목이 심하다. 김수환 추기경, 성철 스님, 한경직 목사 등 극소수 원로를 빼면 이번만큼 범국민적 추모 열기가 뜨거웠던 적은 드물었다.
그에게 쏟아진 찬사 중에는 실제 이상으로 미화한 부분도 없진 않았다. 다수 국민이 존경하는 원로가 드문 우리나라에서 큰 업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만큼 그 정도는 이해할 수도 있다. ‘한국의 철강왕’ 박태준의 공적은 일부 과오를 덮고도 남을 만큼 크다.
그러나 영결식 당일 식장(式場)에 ‘고(故) 청암 박태준 전 국무총리 영결식’이라고 한 것은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군인 경제인 정치인 총리 등 다양한 경력을 지녔으니 잘못된 내용은 아니지만 뒷맛이 못내 개운치 않다. 누가 그렇게 결정했는지는 모르지만 박태준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자리라면 ‘국무총리’보다는 ‘한국 제철산업의 아버지’나 ‘한국의 철강왕’, 굳이 직책을 넣자면 ‘포스코 명예회장’이라고 하는 게 나았다. 총리라고 해야 더 큰 예우라고 생각한 발상에서 뿌리 깊은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영결식장의 관존민비 의식 유감
박태준이 총리를 맡은 기간은 2000년 1월부터 5월까지 넉 달밖에 안 된다. 1968년 포항제철 사장부터 시작해 남은 평생을 철강 및 포스코와 인연을 맺은 것과 비교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조문객은 ‘총리나 정치인 박태준’이 아니라 ‘철강왕 박태준’을 추모했다고 믿는다.
경제계 문화예술계 체육계 등 민간 분야보다 정치나 공직(公職)을 더 영예롭게 여기는 잘못된 풍토만 바꿔도 한국이 한 단계 더 성숙한 나라로 도약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헌신해 나름대로 인정받은 인사들이 속칭 ‘벼슬자리’로 옮겨가 추락하고 패가망신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으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씁쓸하다. ‘박태준 영결식 풍경’이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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