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의 속 얘기를 듣는 건. 박 위원장은 최근 SBS ‘힐링캠프’에 나와 지금까지 어떤 인터뷰에서도 털어놓지 않은 개인사의 보따리를 풀었다.
“프랑스 공항에서 현지 신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 볼트의 전기가 확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고, 구멍이 숭숭 나고, 심장이 없어진 것 같은….”
“(아버지 서거 이후) 국상(國喪) 기간에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몸이 이상해요. 병원에 갔더니 부황을 뜨면 퍼런 멍이 생기듯, 온몸에 그런 게 생겨 너무 놀라서….”
정치부 기자로 자괴감 느껴
불과 스물둘의 나이에 총격으로 어머니를, 5년 만에 다시 총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20대 처녀 박근혜의 ‘깊은 슬픔’이 배어나오는 말들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 때 문구용 커터 피습) 당시 상처가 깊어 얼굴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한쪽 손으로 해도 벌어지는 상처를 막을 길이 없어서 두 손으로 꼭 쥐고 병원에….”
박 위원장은 보통 사람 같으면 단 한 번으로도 무너져 버릴 수 있는, 엄청난 일을 세 번이나 겪었다. 그럼에도 담담한 그의 어조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자괴감도 들었다. 어떻게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정치부 기자들은 현 정권 내내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이자 ‘안철수 바람’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여권 주자의 이다지도 진솔한 인터뷰를 놓쳤을까. 그것도 TV 예능프로에.
변명을 하자면, 꼭 정치부 기자들의 무능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 자신만의 성(城)에 자신을 가둬왔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인사는 사석에서 “어떻게 대표인 내가 (박 위원장) 만나기가 대통령보다 더 어려우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지인은 “TV에서 박 위원장이 등장할 때마다 경호원인 듯한 덩치 좋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나타난다. 이해는 되지만, 일반인과 괴리된 것 같은 위화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모를 모두 총격으로 잃고 그의 표현대로 ‘(상처가) 조금만 더 깊었거나, 조금만 더 밑으로 내려갔다면 생명을 잃었거나 마비가 오는 치명상’을 당한 사람이 자신을 ‘삼성동 자택’에 가두고, 일반과 유리(遊離)시키는 건 어쩌면 당연한 보호본능일 것이다. 일종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따른 반응이라는 전문가들도 있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20대부터 그렇게 엄청난 일들을 겪고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다는 얘기다.
문제는 박 위원장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건 개인 차원을 넘어선다는 데 있다. 대인기피증에 가까울 정도로 칸막이를 치는 박 위원장의 스타일은 친박근혜계 내부에서도 문제로 지적돼왔다. 국가 및 당내 현안에 대한 그의 침묵이 계속돼도 친박 의원들조차 직접 의중이 뭐냐고 물어보기를 꺼려온 게 사실이다.
朴의 트라우마는 개인 차원 넘어
박 위원장이 늦게나마 ‘소통의 보따리’를 풀어놓은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런 노력이 TV 예능프로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친박 진영에서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박근혜의 남자’들마저 말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런 스타일은 박 위원장이 그 엄청난 시련과 트라우마를 딛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27세의 이준석 비대위원이 “너무나 진지하고, 가끔은 무서울 때도 있다”고 느낀다면 많은 젊은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박 위원장은 “나라가 무너져 내리는 IMF 외환위기가 아니었다면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의 충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너무 진지하고, 가끔은 무서운’ 리더보다는 ‘너무 부드럽고, 가끔은 따뜻한’ 리더를 원하는 게 시류(時流)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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