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봉주 팬클럽이 민주당 지도부 뽑는 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7일 03시 00분


민주통합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15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감옥에 가 있는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에게 매달리고 있다. 당 차원의 ‘정봉주 구명위원회’가 따로 있는데도 ‘나와라! 정봉주 국민본부’라는 시민사회·정당 연대기구가 어제 출범했다. 한명숙 후보가 대표를, 문성근 박영선 후보가 산하 위원회 하나씩을 맡았다.

박지원 후보는 경선 연설회에서 정 씨를 면회하고 돌아왔다면서 자신이 대표가 되면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김부겸 후보는 ‘정봉주 석방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고, “젊은이들을 위해 부조리를 양산하는 검찰 권력을 손보겠다”고 다짐했다. 정 씨는 BBK 사건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죄로 대법원에서 1년 징역형이 확정돼 작년 12월 26일 수감됐다.

정 씨에게는 회원이 17만 명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이라는 팬 카페가 있다. 그는 수감되기 전 회원들에게 전당대회 시민선거인단에 적극 참가할 것을 권유했고, ‘옥중 메시지 1호’로 “1인당 10명씩의 시민선거인단을 모아 달라”고 밝혔다. 실제 회원의 상당수가 선거인단에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가 수감 전에 활동했던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도 정 씨 석방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공식 표명했다. 참으로 희한한 풍경이다.

선거에는 대의원 투표 30%, 당원 및 시민선거인단 투표 70%가 반영된다. 그러나 당비를 내는 대의원과 당원은 각각 2만1000명과 12만 명에 불과하고 당과 무관한 시민선거인단이 5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투표가 가능해 시민선거인단의 투표 참여율은 매우 높을 것이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당권을 잡으려면 정봉주부터 잡아라”란 말까지 나온다. ‘미권스’와 ‘나꼼수’ 팬들이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대표와 최고위원이 결정된다면 정상적인 정당정치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정당의 지도부나 공직선거의 후보를 선출할 때 일반 국민을 참여시키는 일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소통을 강화하고 국민의 기대를 받는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경선이 인기투표로 흐르고 선거인단에 영합하는 선동성 공약들을 남발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봉주 팬클럽처럼 특정 선거인단이 대거 참여하면 선거 결과가 엉뚱하게 왜곡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더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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