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봉투가 살포됐다고 폭로한 고승덕 의원은 내일 검찰 출두를 앞두고 “당당하게 검찰 조사에 협조하여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 의원은 돈봉투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누가 돈을 살포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고 의원은 검찰 조사에 앞서 돈봉투를 준 한나라당 전 대표가 누구인지, 누구로부터 전달받았는지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고 의원이 검찰에만 이름을 밝힐 경우, 돈봉투 살포자가 당분간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국민은 누구 말이 맞는지 알기 힘든 ‘진실 게임’을 억지로 지켜보면서 한나라당과 정치권에 대해 불신과 혐오를 더 키워 나갈 판이다. 고 의원이 돈봉투와 관련된 대표 이름을 공개하고 나서 검찰에 출두하는 것이 정도(正道)요, 정치 발전을 앞당기는 길이다.
그 이전에 돈봉투의 주인공으로 지목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과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들은 극구 부인하고 있다. 고 의원의 폭로가 맞다면 박 의장이나 안 전 대표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황영철 대변인은 “예전부터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런 일들이 관행적으로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 정도의 ‘증언’이 나왔는데도 당 대표를 지낸 책임 있는 정치인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세로 버틴다면 비겁하다.
2006년 5·31지방선거를 불과 40여 일 남겨놓은 시점에 한나라당은 김덕룡 박성범 두 의원의 공천 비리 의혹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부패와 연루돼 당의 반이 무너지더라도, 국민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는 한나라당을 만들려 한다”며 피를 토하듯 사과했다. 그때처럼 한나라당을 다시 살리고자 한다면 돈봉투를 전하고, 받고, 혹은 돌려준 어느 누구도 입을 닫고 있어선 안 된다. 설령 전당대회의 돈봉투가 ‘관행’이었다고 해도 한나라당이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야 할 지금은 어떤 정치적 계산도 없이, 솔직히 고해하고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쇄신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먼저 국민 앞에 사과하고, 당시 대표에게 사실을 밝힐 것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은 사실 확인 후 당 차원의 제명조치는 물론이고 선거공영제 도입과 강력한 반부패법 제정에 나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