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도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지난주 미국 공화당 경선이 열린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만난 흑인 택시운전사는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권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보수 성향의 백인 유권자가 많은 아이오와는 4년 전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흑인인 오바마에게 승리를 안겨준 곳이다.
그러나 올해 아이오와에서 만난 유권자들의 분위기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지배적이었다. 열렬한 민주당원이지만 새벽 2시까지 공화당 경선 결과를 지켜볼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결정되든 간에 오바마 대통령이 힘든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선거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와 비슷하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는 인종이 유권자 선택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08년 대선에서 인종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는 전략으로 승리한 오바마에게는 별로 기쁜 소식이 아닐 듯싶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3년 동안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리더십 부재의 원인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분분하다. 초선의 시카고 상원의원 출신이라는 ‘워싱턴 아웃사이더’ 전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종 문제가 워낙 민감한 이슈이기에 겉으로 대놓고 말하지 못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앤드루 로젠탈의 글이 큰 반향이 일으키고 있다. 그는 미국 정치권이 백인 대통령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경스러운 태도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 윌슨 하원의원이 의회 연설 중인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친 것과 대통령 의회 연설이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과 겹치지 않도록 토론 날짜를 연기해 달라는 오바마의 요청을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묵살한 것, 공화당 경선 후보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오바마를 가리켜 “푸드 스탬프(흑인들이 많이 받는 정부 식량보조 카드)를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라고 비난한 것 등을 들었다.
이 사례들은 인종적 편견에 의한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그 어떤 전임 대통령보다 고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문제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이에 대처하는 오바마의 자세다.
인종 문제는 오바마에게 양날의 칼과 같다. 이를 부각시키면 유색인종의 표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백인 유권자의 표를 잃을 수 있다. 백인들에게 심적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흑인들에게 있어 ‘흑인 불만(black grievance)’을 너무 강조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과 같다.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는 흑인 후보였지만 인종을 거의 이슈화하지 않았다. ‘너무 블랙스럽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그 전략은 성공했다. 올랜도 패터슨 하버드대 사회학 교수는 “오바마는 40대 이하 민권운동 이후 세대의 심리상태를 잘 파고 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다를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로 사회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흑인 실업이 급증하면서 인종 문제는 더 이상 지나칠 수 없는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강경 보수 일색인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백인 역차별에 초점을 맞춰 벌써부터 인종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다.
올해 미국 대선은 ‘레이스 이슈(race issue)’가 본격 제기되는 대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인종 문제가 어느 정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 문제에 대해 어떤 전략을 택할지가 이번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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