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희태 국회의장 사퇴하고 조사받으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0일 03시 00분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 때 돈봉투를 전달한 당사자로 박희태 국회의장 캠프를 지목했다. 고 의원은 검찰에서 “300만 원이 든 봉투 안에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이 들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박 의장은 돈봉투 전달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고 의원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무조건 잡아뗀다고 끝날 일은 아니다. 이대로 가면 현직 국회의장이 재임 중 검찰 조사를 받는 초유의 일이 벌어질 판이다.

고 의원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쇼핑백에는 똑같은 노란색 봉투가 잔뜩 들어 있었다. 여러 의원실을 돌아다니면서 돈 배달을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당시 박희태 후보 캠프 인사가 서울 지역 당협 사무국장 30명에게 50만 원씩 모두 2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검찰은 박 의장 조사에 대비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를 포함한 4개 부서로 수사팀을 확대 구성했다. 수사 범위를 고 의원 사건에 국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박 의장은 당시 원외(院外) 인사여서 고 의원 같은 현역 의원을 접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친이(親李) 주류 진영이 당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조직적으로 박희태 대표 만들기에 나선 것이 당시 한나라당의 분위기였다. 검찰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 수사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국회의장은 국회 권위의 상징이다. 어떤 국회의원보다 도덕성에 한 점 의혹이 없어야 하는 이유다. 현직 의장의 검찰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 자체가 입법부 전체의 불명예로 남을 수 있다.

박 의장은 올 신년사에서 “종근여시(終勤如始)라는 말처럼 마지막도 처음처럼 부지런하게 최선을 다해서 국민 화합과 국론 통일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13대 국회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당시 자신도 ‘젊은 피’로 꼽혔다고 회고했다. 박 의장은 검찰 고위직을 거쳐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률가 출신이다. 국회의장의 체통을 생각한다면 4개월여 남은 의장 임기에 연연하지 말고 의장직을 내놓은 뒤 고해하는 자세로 검찰 조사에 응하는 것이 초심(初心)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길이다.

민주통합당도 자체 진상조사를 벌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해당 후보자의 자격 박탈과 검찰 수사 의뢰 절차를 밟기로 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돈 냄새가 진동하는 구태정치와 결별해야만 정치권에 등 돌린 국민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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