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美談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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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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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미국의 프로풋볼 선수 팻 틸먼이 고액 연봉 제의를 뿌리치고 육군 특수부대에 자원입대했다. 몇 달 전 터진 9·11테러로 충격에 빠진 미국인들은 감동했다. 2004년 4월 미군은 틸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교전을 벌이다 동료 병사들을 구하고 전사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훈장을 추서하고 국민의 애도 속에 장례식이 치러졌다. 하지만 틸먼의 어머니는 군이 아들의 죽음을 미화해 선전에 이용하고 있다며 진상 규명에 나섰다. 한 달 뒤 당국은 틸먼이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했다고 정정 발표했다.

▷2003년 이라크전쟁 때 미군은 제시카 린치 일병이 홀로 끝까지 싸우다 생포돼 고문받던 중 구출됐다고 발표했다. 린치 일병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됐고, 국민은 여군을 고문했다는 이라크군에 분노했다. 그러나 린치 일병은 전투가 아닌 차량 전복 사고로 부상했고 이라크군은 고문은커녕 치료를 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오인 사격이든 전복 사고든 나라를 위해 일하다 죽고 다친 이들은 모두 영웅이다. 미군은 전쟁의 명분을 살리고 군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공연히 미담(美談)을 조작했다가 망신을 자초했다.

▷국민에게 고통 주는 독재자를 위한 미담 조작은 한결 질이 나쁘다. 나치 정권은 히틀러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최일선을 누빈 전쟁영웅이었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후방에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한가하게 그림 그리기를 즐긴 연락병이었다. 북한 김일성 왕조는 조작의 대가다. 김일성은 가랑잎 한 장으로 대하(大河)를 건넜고, 김정일은 72홀 골프장에서 38언더파를 치고 홀인원을 11번 했으며, 김정은은 20대에 육해공군을 지휘한 ‘천재 중의 천재’다. 3대 영웅이 주민은 왜 굶겨 죽이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여름 폭우 때 시민을 구하다 순직한 의경의 사망 경위가 조작됐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 의경은 컨테이너 숙영시설에서 “물이 목까지 찰 때까지 기다려라”라는 중대장 지시에 따라 대피를 늦추다 급류에 휩쓸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영웅 만들기’ 차원의 미담 조작을 넘어 부하를 죽음으로 내몬 지휘관의 ‘면책용 날조’다. 의경에게도, 지휘관에게도 씻지 못할 불명예를 안겨줄 수 있는 만큼 철저한 조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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