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인석]고속철 경쟁도입 폐해 최소화하려면

  • Array
  • 입력 2012년 1월 11일 03시 00분


정인석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정인석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는 서비스 개선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고속철도 일부 구간에 경쟁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독점에서 경쟁체제로의 전환은 기업경쟁력을 높이고 더 나은 서비스, 더 낮은 요금으로 소비자 혜택을 증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경쟁 도입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급자가 는다고 경쟁효과가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철도 같은 네트워크산업에서는 경쟁이 왜곡되기 쉬워 자칫 공기업 독점 때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경쟁규칙을 잘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그런 노력은 잘 보이지 않고 신규 사업자 선정만 서두른다는 느낌이 든다.

철도 경쟁에 있어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짚어보자. 우선 철도공사는 수익부문(고속철도)에서 적자부문(일반철도)을 보조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고속철도에서는 요금이 비용을 초과하고 일반철도에서는 반대다. 경쟁이 도입되면 이런 교차 보조는 유지될 수 없다. 정부 계획대로 신규 기업이 수익부문에만 진입하면 철도공사의 적자부문에 대한 보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신규 기업이 요금을 상당히 낮출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것은 신규 기업이 철도공사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같은 교차 보조 구조 때문이다. 경쟁할 경우 철도공사의 일반철도 요금은 높아져야 한다. 교차 보조는 효율성 면에서 개선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일반철도 요금의 급격한 인상도 바람직하지 않다. 교차 보조의 조정 정도가 적절하게 정해져야 하고, 보조의 부담을 모든 기업에 공정하게 배분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한편 공기업과 사기업 간에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의문이다. 철도공사가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 경쟁은 보장되기 어렵고 정부의 경쟁 관리로 시장 기능이 무력화되기 쉽다. 활발한 경쟁을 위해서는 철도공사의 민영화를 함께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는 공기업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규제자라는 모순에 직면한다. 마치 한쪽 축구팀의 감독이 심판을 보는 것과 같아 게임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두 기능이 분리되고 규제 형평성이 갖추어져야 효과적인 경쟁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중립성과 전문성을 가진 별도의 규제 기관을 두는 것이 좋다.

경쟁 도입은 단순히 신규 사업자를 선정하는 게 아니다. 규제 완화의 과정이고 공정 경쟁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독점에서 시장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경쟁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선의 제도가 무엇인지 정부는 더 고민하고 그것을 제시해야 한다. 명확한 규칙 없이 경쟁이 도입된다면 경쟁은 제대로 발휘되지 않거나 왜곡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규칙을 만드는 일은 사업자 선정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가장 효율적인 사업자가 선정될 수 있다.

정인석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