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우리 모두에게는 똑같은 소포가 하나씩 배달됐다. 내용물은 ‘나이 한 살’이다. 더러는 반긴 이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이맘때면 한 번의 사고나 예외 없이 한사코 배달되는, 반송불가의 이 소포 앞에서 또다시 한숨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오늘, 우리뿐일까. 옛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섣달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며 꼬박 밤을 새웠다. 나이가 담긴 소포의 배달을 막아 보겠다는 ‘수세(守歲)’가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그 긴 겨울밤을 그냥 지새울 리도 없다. 두루두루 모여 앉아 가는 세월 아쉬워하고 한 살 더 먹는 부담을 애써 잊으려 액운과 잡귀의 소생을 막는다는 약술로 주안상까지 차렸으니 그 술이 ‘도소주(屠蘇酒)’다.
나도 ‘나이 한 살’이란 이 달갑잖은 소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내게 배달 될 것이란 사실을 연말에 페이스북의 내 계정을 통해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았다. 오십 줄에 나이 한 살은 사십대에 그것과 의미와 무게가 크게 다르다. 그런데 앞으로 차지하게 될 육칠십에는 더더욱 그럴 터이니 이 반갑잖은 선물의 배송을 그이가 굳이 내게 확인시켜 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걸 나는 ‘변화’라고 받아들였다.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같다면 세월이나 인생은 아무 의미 없는 시간놀음에 불과할 터. 나이 듦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나도 페이스북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사람이 늙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변화를 멈추기 때문이다―어제 배송된 나이 한 살 택배 소포에 붙이는 사용설명서’라고.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점점 쓸모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지배적이던 ‘부정의 심리학’ 골자다. 그 시각에서 보면 사오십대 ‘중년’은 당연 ‘위기의 세대’다. 그런데 거기 동의하시는지. 그렇지 않다. 그런 낡고 부정적인 견해는 바뀌었다. 중년은 새로운 성장이 가능한 ‘2차 성장기’로 받들어진다. 그걸 찾아낸 건 인생을 보는 새로운 생각―나이 듦을 쇠퇴가 아니라 성숙으로 보는―‘긍정의 심리학’이다. 그런 관점에서 살피니 그간 감지 못한 중년세대의 능동적 행동 변화가 보인다. 나이 듦이 ‘쇠퇴→몰락’이 아니라 ‘발전→성공적 노화(Aging well)’라는 도식이다. 그게 인생 ‘100세 시대’와 함께 온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아울러 이런 새 시대를 살아가는 데 요구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건 두말할 나위 없고.
내 나이에 한 살을 더하고 그만큼 세월의 무게가 더 느껴졌던 새해 아침. 2차 성장도, 성공적 노화도 변화를 추구하는 열정적 삶이 없다면 별무소용일 터. 그렇듯 의기소침하던 차에 소설가 이외수 씨의 트위터 글 하나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한 번도 안 쓴 날들을 365일이나 배달받았습니다. 보람 있게 쓰겠습니다. 남을 위해서도 쓰겠습니다. 열심히 살기도 하겠지만 열심히 노는 데도 쓰겠습니다.’ 그거였다. 내가 걱정할 건 ‘나이 한 살’이 아니라 ‘한 번도 안 쓴 수많은 새날’이었다. 남을 위해서도, 열심히 노는 데도 써야 할 그 새날이다. 지금 나는 배달 사실도 모른 채 방치됐던 소포 하나를 푼다. 거기 담긴 한 번도 쓰지 않은 354일의 새날을 어떻게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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