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박종철 학생생활국장이 오늘까지 열리는 제11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간 인권침해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어렵고, 학생에 의한 교사 인권 침해를 막는 데도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전교조에서 학생생활 문제를 담당하는 간부가 전교조의 공식 방침과는 다른 의견을 용기 있게 제기한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려 있는 교육계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박 국장은 학교 현실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교사나 교칙에 의한 인권 침해가 교실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지만 실제로는 따돌림 괴롭힘 폭력을 포함한 학생 간 인권 침해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교사가 교실을 지배하는 권력이었으나 지금은 학교와 교사, 학생 사이에 크고 작은 권력 다툼이 교실 내에서 끊이지 않고 있어 학생인권조례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국장은 교권 침해 현상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교사에게 욕을 하고도 발뺌을 하면 교사가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학생들이 잘 안다. 학생들이 급우와의 권력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교사를 제물로 삼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또 박 국장은 “교실이 학생들의 왜곡된 인정(認定) 욕망이 지배하는 공간이 됐는데도 교사에게는 학생을 조사할 권한도 없다”면서 “교사들은 학부모의 책임 추궁이 두려워 사태를 방치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붕괴된 교실을 바로잡기 위해 시급한 것은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라 학교 구성원 전체의 의식 향상이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사를 가해자로 몰아세우고 그들의 손발을 묶어 놓는 조치다. 학생이 급우를 때리고 괴롭히면 교사가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꾸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을 되찾아야 지금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 전교조가 교조주의에 빠져 세(勢) 과시 하듯 학생인권조례를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전교조는 최근 성명에서 학교폭력 사태의 원인을 ‘경쟁 위주의 학교교육’으로 지목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입시경쟁의 역사는 수십 년이 넘었다. 박 국장은 입시경쟁이 덜한 다른 나라에서도 ‘왕따’와 폭력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입시경쟁을 핵심적인 원인으로는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학교폭력 문제는 전교조 등 좌파의 ‘진영 논리’가 아니라 과학적인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