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낭비 건물로 논란이 됐던 성남시청과 용인시청 등 지방자치단체 청사가 준공 후 여름에는 ‘호화찜통’, 겨울에는 ‘냉장고’ 소리를 듣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미관에만 신경을 써 외벽을 온통 유리로 한 탓에 에너지 효율이 나쁘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내년 7월부터 총건축면적 20만 m² 이상 대형 건축물을 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포함하는 법령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이는 환영할 일이며 늦은 감이 있는 만큼 더욱 서둘러 진행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현 개정안만으로는 고층건물이 주변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충분히 평가하는 데 부족한 부분이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 환경부 안은 대형 건축물의 영향평가 대상 항목으로 에너지, 자원 순환, 실내 환경, 미관, 경관, 생태성 등을 꼽고 있다. 반면 고층건물의 환경영향평가에 중요한 빌딩바람, 열섬현상 심화, 일조권 침해 등은 대상에서 빠져 있다. 열섬현상의 경우 에너지 항목에서 일부 다루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쉽다.
빌딩바람 문제를 보자. 작년 가을 태풍 곤파스가 상륙했을 때 고층 건물 바람이 빠져나가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단지에서는 수십 가구의 유리창이 깨졌다. 공중전화 부스가 날아가고 수목도 뿌리째 뽑혔다. 이는 태풍이 일렬로 늘어선 고층 건물 사이를 통과하면서 골바람 증폭효과로 더 세진 탓이다. 서울시는 자신도 모르게 빌딩바람 야외실험장을 건설한 셈이다.
열섬현상은 도시지역이 주변보다 더운 현상을 말한다. 낮에 도시 구조물에 축적된 태양에너지가 밤에 방출돼 도시 기온을 높이는 것이 주 원인이다. 대도시처럼 고층건물이 밀집해 들어선 단지는 야간 복사열이 건물 사이에 갇히면서 열섬현상을 키운다. 폭염 시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도시 기후 변화는 주변 대기층의 구조를 변화시켜 기상재해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여름을 비롯해 최근 서울에 국지성 집중호우가 빈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조권 문제 역시 심각하다. 고층건물 주변 건물 중 다수가 겨울만 되면 햇빛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규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과 같은 두루뭉술한 일조권 영향평가는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의 대상 기준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현 환경부 예고안은 총면적 20만 m² 이상인 건물만 평가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현재 문제가 되는 많은 대형 건축물들과 높이 200m 이상 되는 초고층 건물이 평가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50∼60m 높이의 건물만 돼도 지상과 전혀 다른 기후 환경이 만들어지지만 현재의 안으로는 이를 규제하기 어렵다.
선진국은 고층건물의 환경영향을 엄격하게 평가한다. 일본 도쿄는 높이 95m 내외의 건물이 많다. 지자체에서 높이 100m 이상 고층건물에 엄격한 환경영향평가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75m 높이의 건물 설계안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한 후 25m 높이의 세 건물로 나눠 짓게 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서울시가 조례로 대형 건축물 평가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랜드마크라는 이름으로 100층이 넘는 초고층건물 건축 계획이 난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에선 당연히 환경영향평가 대상인 30층 이상 고층아파트를 일반 주거지역에 서슴없이 짓는 난개발이 재개발 명목으로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고층건물은 일단 세워지면 철거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 단계부터 주변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신중히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고층건물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더욱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친환경 설계기준을 대폭 강화해 난개발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건축시장이 개방됐을 때 외국 건축가가 자국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실험적인 고층건물을 한국에서 멋대로 짓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훗날 더욱 심각한 도시 기후재해로 고통 받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욱 강력하고 철저한 법안의 마련과 조속한 시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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