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광화문 현판을 어떤 글자로 할 것인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재 준비는 됐으나 글씨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11, 12월 4대 궁 및 종묘 방문객, 성인 남녀 등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현판 글씨는 한글 53.7%, 한자가 41.3%로 나타나 한글 의견이 우세했다. 그런데 문화재 전문가들에게 자문한 결과는 한자가 월등하게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2, 3월 중 공청회를 열어 다양한 의견을 듣고 결정할 예정이다.
글씨의 실물 조합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원론적으로 한글이냐 한자냐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것은 일의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말이다. 글자가 한글이냐 한자냐를 먼저 정해야지, 그것과 상관없이 어느 글자체가 좋은가 모양을 보고 결정한다는 것은 순서와 이치에 맞지 않다.
광화문 현판은 숭례문과 같은 옛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과는 다른 큰 뜻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한글로 달아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광화문은 우리나라의 대문이다. 우리 대문의 문패를 왜 한자로 달아야 하는가? 서울을 찾은 외국관광객 상당수가 광화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대한민국은 글자가 없는 나라로 오해할 수도 있고, 중국 관광객은 ‘과거에 우리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를 잘 보여 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흐뭇해할 것이다. 중국 톈안먼(天安門) 현판을 한글로 바꾸어 단다면 아마 톈안먼 광장에 대규모 시위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둘째, 광화문 안에 있는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법궁으로 세종대왕이 그 안에서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었고, 광화문이라는 이름도 세종대왕이 지었다. 그래서 그 앞길이 세종로이며, 옆에 세종문화회관이 있고 정면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바로 뒤에 광화문 현판이 있는데 이것을 한자로 써 붙이면 과연 잘 어울리겠는가.
셋째, 문화재 복원의 문제다. 문화재청 관계자에 따르면 글자의 복원과 관련해 한글로 쓰면 ‘월인천강지곡’에서 ‘광화문’ 세 글자를 집자(集字)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으며, 한자로 쓸 경우 세 가지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거론된 고종 때 임태영의 글씨는 이미 깨진 판이고 복원의 의미도 없다. 이는 어차피 짝퉁일 수밖에 없다. 한자 복원에 의미를 둔다면 1339년 태조 때 처음의 것을 복원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광화문 한글 현판 걸기 공청회는 지난해 2월 한글학회 주최로 열린 바 있다. 여기서도 해례본체, 언해본체, 궁체, 박정희체 등 다양한 글씨체 대안이 나왔는데 좋은 글씨체는 얼마든지 있다.
문화재청은 과거의 문화재적 가치에 집착하거나 옛것에 못이 박인 문화재 전문가 또는 위원이라는 사람들의 의견에 중심을 둘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나라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는 시각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 역사에 길이 남을 광화문 한글 현판을 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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