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마야 달력’으로는 인류의 마지막 해가 될 2012년이지만, 미래를 내다보겠다는 전망과 예측은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는 112년 전 토목기사 존 앨프리드 왓킨스의 한 세기 뒤 전망이 화제가 되고 있다. 1900년 여성지에 쓴 칼럼에서 그는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사진을 전송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미국인의 평균 키가 1∼2인치 늘고’ ‘온실에서 야채를 재배하게 될 것’ 등을 전망했다. 제법 많이 맞힌 셈이다.
미래 예측은 19세기의 발명품으로 꼽힌다. 근대 이전에 미래 예측이란 종교적 ‘예언’과 같은 개념이었다. 두 번째 밀레니엄이 오는 순간 그리스도가 재림해 선한 사람들만을 천년 왕국으로 데려간다는 믿음으로 전 유럽이 전전긍긍했던 일이 대표적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관, 전등, 전신 등 문명의 이기가 잇따라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기술이 인간의 미래를 바꿔 놓으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됐다. 유럽 대도시 곳곳에서 박람회가 열렸던 19세기 후반은 저널리즘과 픽션의 구분 없이 펼쳐진 미래 예측의 급성장기였다. 쥘 베른이 소설에서 해저와 우주를 쉼 없이 오가며 낙관적 미래상을 펼쳐냈던 것도 그때다.
19세기 마지막 해에 나온 왓킨스의 전망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미래 전망을 펼쳐보는 일은 각별한 재미를 준다. 오늘날 실현된 일을 짚어 보는 것이 흥미로우며, 실현되지 않은 것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숙고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935년 1월 1일자 동아일보에도 흥미로운 미래의 예측이 펼쳐진다. 성층권에 ‘항공도로’가 생기고, 세계의 뉴스가 사진까지 보여주는 방송으로 진화하리라는 예언은 오늘날 실현됐다. 반면 ‘비행열차(모노레일)’가 장거리 운송수단으로 각광받으리라는 예측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1971년 한국미래학회가 내놓은 ‘서기 2000년의 한국에 대한 조사연구’도 흥미를 자아낸다. 2000년 한국은 컴퓨터 1만 대를 보유하고, 필요한 정보는 컴퓨터 터미널을 통해 얻게 된다고 했다. 인터넷을 내다본 셈이지만 사람마다 컴퓨터를 갖게 될 것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오늘날은 바야흐로 ‘미래 예측의 전성시대’가 됐다. 국가전략에서 개인의 투자전략까지 미래의 트렌드를 내다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어떤 것이 정확하고 어떤 것이 내실 없는 전망인지 달아보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역사상의 수많은 예측과 그 결과에서 얻는 교훈은 분명 있다.
첫째, ‘예전에도 정확했으니 내 말을 믿으라’는 선동에는 현혹될 필요가 없다. 지난주 나온 책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스티븐 로 지음·와이즈베리 펴냄)는 사람들을 미혹에 빠뜨리는 대표적 ‘심리적 파리지옥’으로 ‘일화 나열하기’ 전략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러 짐작을 나열한 뒤 몇 가지는 맞혔다는 점을 들어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둘째, 인간의 기본적 생활양식인 언어와 음식문화에 획기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 항목이 있다면 버리는 것이 좋다. 이 요소들이 이웃한 문화권으로 침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상기하면 된다. 식사를 알약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라든지, 세계 언어가 통일된다든지 하는 예언들은 모두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왓킨스의 예언 중 대표적으로 틀렸다고 지목된 부분도 “알파벳에서 잘 쓰지 않거나 대체할 수 있는 X, Q, C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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