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교사들이 처음 발견했을 때 엄벌해야 문제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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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6일 03시 00분


오사와 히데아키 일본 이지메피해자모임 대표

13일 일본 후쿠오카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이지메피해자모임’의 오사와 히데아키 대표가 미리 준비해온 자료를 들고 일본의 이지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가벼운 이지메가 폭행, 공갈, 성희롱 등 괴물로 변하는 것은 이지메 사실을 감추려고만 하는 교육당국의 태도 때문”이라며 “한국의 시민단체와 이지메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후쿠오카=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13일 일본 후쿠오카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이지메피해자모임’의 오사와 히데아키 대표가 미리 준비해온 자료를 들고 일본의 이지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가벼운 이지메가 폭행, 공갈, 성희롱 등 괴물로 변하는 것은 이지메 사실을 감추려고만 하는 교육당국의 태도 때문”이라며 “한국의 시민단체와 이지메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후쿠오카=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1986년 2월 일본의 한 기차역 화장실에서 13세 소년이 한 장의 편지를 남기고 목을 매 숨졌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이 학생은 ‘나는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생지옥과 다를 바 없다’는 내용의 이지메(집단따돌림의 일본어)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겼다. 일본에서 발생한 첫 이지메 자살사건이었다. 일본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신문과 방송은 연일 이지메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기사를 톱뉴스로 다뤘다. 일본 정부도 이지메에 대한 정의(定義)를 만들고 실태조사에 나서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렀지만 일본엔 여전히 이지메가 성행한다.

“지금도 한 달에 수백 건의 이지메 사건 상담이 들어오는데도 교육당국은 마치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침묵하고 있어요.”

이지메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이지메피해자모임’(이하 모임)의 오사와 히데아키(大澤秀明·68) 대표는 13일 후쿠오카(福岡) 시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지메가 근절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그동안 일본 사회가 경험한 문제점과 처방을 자세히 설명했다.

오사와 대표의 넷째 아들인 히데타케(秀猛·당시 15세) 군은 1996년 1월 이지메를 참다못해 목숨을 끊었다. 아들이 숨진 후 오사와 대표는 이지메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학교당국과 지방자치단체 교육위원회에 맞서 8년에 걸친 법정 싸움을 벌였다. 2006년 10월에는 모임을 만들어 전국적인 이지메 추방활동을 시작했다.

오사와 대표가 전하는 일본의 이지메 현실은 암담했다. 그는 “이지메로 인해 등교거부 등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53만 명에 이르고 이지메 자살도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지메는 어느 사회, 어느 학교에나 있기 마련이어서 근절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심각한 문제로 커가는 것을 멈출 수는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이지메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6년이 지나도 이지메 문제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지메에는 전형적인 구조가 있다. 처음에는 급우들 간에 놀림이나 희롱처럼 비교적 가벼운 이지메가 일어난다. 그런데 교사는 이를 학생들 간의 사소한 트러블(마찰)로 간주하고 가벼운 지도에 그친다. 그러면 피해 학생은 교사와 학교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가해 학생의 보복이 두려워 자꾸 숨기게 된다. 이처럼 이지메를 방치하면 가해의 정도와 폭이 갈수록 심해지고 결국 피해를 견디지 못한 학생은 등교거부, 자살을 생각하거나 거꾸로 가해 학생을 공격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지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학교 당국이 문제라는 것인가.

“학교나 교육위는 이지메가 있어도 이를 이지메로 인정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식의 지도에 그치고 있다. 출발 자체가 틀렸다. 이지메에 대한 철저하지 않은 인식 때문에 초기에 비교적 가벼운 이지메 문제가 점점 폭행, 공갈, 성적 희롱 등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오사와 대표는 “이지메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고통을 주면서 즐기는 범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지메를 방치하면 가해자의 폭력 수위와 괴롭힘의 정도가 점점 강해지고 피해자는 등교를 거부하거나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해 자신만의 세계로 움츠러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고 최악의 경우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학교와 교사의 노력이 이지메를 없앨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은 이웃나라를 침략해 이지메한 과거 역사를 철저히 반성했다. 이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도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약한 학생을 못살게 구는 이지메가 발생하면 교사는 모든 학생이 보는 앞에서 문제학생을 불러 일으켜 세워 호되게 꾸짖었다. ‘약자를 괴롭히는 이지메는 비겁한 행위’라고 가르쳤고 가해 학생이 수치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1950, 60년대만 해도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거짓말은 도둑이 되는 첫발’이라든가 ‘거짓말쟁이에게는 가시 1000개를 먹여야 한다’ 등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이런 교육의 철저함이 있었기에 이지메는 지금보다 약했고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지 않았다. 교사가 이처럼 이지메에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면 학생들도 ‘이지메는 절대 안 되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 우리 선생님이 약한 학생을 보호해 주는구나’라는 신뢰가 생기고 안심하고 이지메 피해를 알리게 된다. 이지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교육현장에서는 ‘피해 학생으로부터 SOS가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건 변명에 불과하다. 학생과 교사 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숨기게 되고, 이런 음습한 환경에서 이지메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오사와 대표는 일본 교육당국이 2002년부터 도입한 유토리 교육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토리 교육은 과도한 입시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학교수업을 줄여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이른바 전인교육이 목표였다. 그는 “일본 내에서는 유토리 교육이 학력 저하를 불러왔다고 걱정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큰 문제가 학생들의 권리 의식만 키운 점”이라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다 보니 이지메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자기 권리에 집착하는 것과 이지메는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인가.

“가해 학생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가해 학생들은 아이들을 괴롭히고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폭행하고 돈까지 갈취한 학생들이 처음에는 폭행 사실을 부인한다. 그러다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대면 그때서야 ‘몇 번인가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때린 적은 있지만 그래도 폭행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아이들부터 이지메 그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깡패가 무고한 시민을 발로 차 돈을 갈취하면 심각한 폭력으로 여기면서 학교에서 이런 행동이 일어나는 것은 ‘트러블’로 받아들이는 건 대체 무슨 경우인가.”

―그렇다면 학교와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이 병에 걸리면 병원에서 진료검사를 받는다. 수술이 필요하면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이지메 대책도 비슷한 대처가 필요하다. 체벌을 금지하는 게 세계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일본은 2007년 학교법을 개정해 체벌에 대한 정의를 전면 수정해 문제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거나 수업 중에 일으켜 세우거나 분리교육을 시키는 것을 허용했다. 이지메 학생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지메 가해 학생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이지메 학생에게 벌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소풍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거나 효과가 없으면 퇴학 처분까지도 내린다.”

―학교는 왜 안이하게 대처하나. 왜 인정하려 하지 않는가.

“학교와 교육위원회가 이지메가 아니라 트러블에 불과하다고 설명하는 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지메가 발생할 때 사소한 트러블로 처리해놓고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지메로 처리하면 이지메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돼 모두가 괴로워진다. 교사도 학교장도 교육위원회도 모두 책임 문제가 발생한다. 소송 문제로 비화할 경우 배상책임도 져야 한다.”

―이지메를 당하는 학생에 대한 편견도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이지메 가해 학생에게 너무 관대하다. 오히려 이지메를 당하는 학생을 ‘뭔가 문제가 있는 학생’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이지메 자살사건이 발생하면 학교는 ‘이지메는 없었다’며 사실을 은폐하면서 자살한 학생의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 ‘존엄한 생명을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자살한 학생의 의지력 부족을 문제 삼기도 한다. 약한 학생이니까 이지메를 당하는 것이고 자살까지 한다는 식으로 본말을 전도한다. 이지메 피해 학생에게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설사 가정에 문제가 있고,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이들이 이지메를 받아 마땅하다는 식으로 간주하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다. 그런 학생이 있다면 교사가, 동급생들이 서로 손을 내밀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인간사회다. 약하다고, 남들과 좀 다르다고 이들을 소외시키고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다.”

―한국도 이지메가 심각하다.

“한국에서도 최근 이지메 자살이 일어나 크게 사회 문제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도 우리와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분들과 협력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교육당국에 함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다. 강연회도 좋고 공동 심포지엄도 좋다. 같이 모여 이지메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와 의식이 사회적으로 공유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세계적인 운동으로 만들어가고 싶지만 우선 이웃나라인 한국과 협력하고 싶다.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내일이라도 비행기표를 예약하겠다. 양국 시민단체 간의 협력이 한일 우호에도 좋은 일이 아니겠나.”

후쿠오카=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年 2만건이던 이지메 2006년 이후 급증 ▼
日정부 새로 정의 내리고 찾아내려 애써


일본 문부과학성이 해마다 발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 이지메 발생건수는 7만5000건으로 전년보다 2000건이 늘었다. 일본에서 해마다 자살하는 학생은 147명에 이르는데 문부과학성은 이 중 이지메로 인한 자살을 4건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서는 절반 이상이 이지메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지메 발생건수만으로 이지메 대책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2006년 이전까지 1만∼2만 건이던 이지메 건수가 2006년 이후 급증한 것은 일본 교육당국이 이지메를 해결하기 위해 이지메를 더는 숨기지 않고 공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지메 국제비교 등으로 유명한 모리타 요지(森田洋司) 전 오사카쇼인(大阪樟蔭)여자대학장은 “과거에는 일본 교육계에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교육자가 많아 이지메 은폐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지메에 대한 정의를 3차례씩 수정하고 통계기준도 철저히 한 결과 오히려 발생건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2006년 이후 이지메 자살이 끊이지 않고 교육 당국의 사실 은폐 태도에도 전혀 변화가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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