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광이기도 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게리 쿠퍼나 에바 가드너 같은 매력적인 외모의 남녀배우가 활약하던 시절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는 “더스틴 호프먼이나 잭 니컬슨, 로버트 드 니로(같은 연기파 배우)가 미국 영화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평했다. 메릴 스트립에 대해서는 “제발 인생의 고뇌를 한 몸에 끌어안은 듯한 그런 표정 좀 짓지 말라”고까지 썼다. 주연 여배우가 싫어 보러 가지 않은 영화로 메릴 스트립이 등장한 ‘폴링 인 러브’를 꼽을 정도다.
▷메릴 스트립이 ‘킹콩’(1976년 작)의 주연 여배우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디노 데 라우렌티스 감독은 이탈리아어로 “왜 저런 못생긴 애를 데려온 거야”라고 말했다가 메릴 스트립이 이탈리아어로 대꾸하자 당황했다는 얘기가 있다. 나로서는, 신이 메릴 스트립에게 니콜 키드먼의 외모를 주지 않은 것이 유감이지만 대신 그의 영화를 보면 연기에 몰입할 수 있어 좋다. ‘소피의 선택’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로맨틱한 억척 덴마크 여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세련된 보그 편집장까지 그가 소화하지 못할 역할이 무엇일지 궁금할 정도다.
▷새 영화 ‘철의 여인’의 주인공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역으로 할리우드가 고른 여배우도 메릴 스트립이었다. 그가 이 영화로 다시 골든글로브 상을 받았다. 올해 63세로 대처의 총리 사임 때 나이와 엇비슷한 메릴 스트립이 더 늙기 전에 이 역을 맡았다는 것이 관객으로서는 행운이다. 메릴 스트립은 딱딱하게 들리는 영국식 영어의 억양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대처를 연기한다. 미국 일간 시카고트리뷴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마이클 필립스는 “영화가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메릴 스트립의 대처 연기는 대단했다”고 평했다.
▷대처 총리는 고질적인 영국병을 고쳐냈다는 찬사와 사회를 양극화시켰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철의 여인’이 이미 개봉돼 상영 중인 영국에서 이 영화는 런던 등 남부에서는 인기를 끌고 있지만 탄광 지대가 있었던 중북부에서는 별로라는 소식이다. 그러나 메릴 스트립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리어왕 식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한 인간으로서의 대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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