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이 설을 앞두고 복지 폭탄 세일을 하고 있다. 정부가 만 5세 무상보육을 얘기한 게 몇 달 전인데 3, 4세 무상보육이 새로 발표됐다. 2세 미만 아동을 위한 양육수당도 소득 하위 15%에서 75% 계층으로 확대됐다. 내년부터는 양육과 보육이 사실상 거의 무료가 되는 것이다.
‘민주당=무상급식’처럼 여권은 ‘한나라당=무상보육’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무상급식이 1인당 월 5만 원짜리라면 무상보육은 1인당 월 20만 원 정도로 거의 4배다. 민주당이 무상급식으로 선거에서 챙긴 재미를 여권이 볼지는 의문이지만 확실하게 ‘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경제맥락 잃어버린 무상보육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가 지금 여권의 복지정책을 움직이는 힘이다. 애초부터 말만 그럴듯했지 그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가 실상은 별 게 아니라 유럽 복지선진국이 과거 도입한 것을 경제적 맥락도 따져보지 않고 따라하는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보육 서비스는 본래 맞벌이 여성을 위한 것이다. 유럽 복지선진국에 보육 서비스가 정착된 것은 외국 노동자를 들여와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경제가 성장할 때다. 그때 여성을 위한 일자리도 당연히 늘었다. 현재 스웨덴에서 여성의 노동참가율은 남성의 노동참가율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일을 원하는 여성은 남성과 거의 같은 비율로 일자리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20가구가 있다고 치자. 20명의 엄마가 아이들을 각각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2명에게 맡기면 나머지 18명은 일할 수 있다. 보육 서비스가 등장한 이유다. 그러나 그것은 18명이 일할 자리가 있을 때 얘기다. 일할 자리가 없으면 얘기가 다르다. 엄마들이 아이에게서 해방돼 일자리를 찾을 때 일자리가 없으면 고스란히 실업률 증가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고용 없는 저성장 시대에 무상보육의 섣부른 확대는 돈은 돈대로 쓰고 실업률만 높이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보육 지원비는 가정으로 가는 게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보육시설로 간다. 엄마들은 혜택을 보기 위해 직장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아이들을 보육시설로 보내려고 기를 쓸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엄마를 놔두고 아이를 모두 나라가 맡아서 키우겠다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그렇게 말하면 집에 있는 엄마들은 분명 서운해할 것이다. 사실 엄마들에게 직접 돈을 주고 아이를 집에서 키울지 보육시설에 보낼지 선택하도록 하자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에 있는 엄마들은 일을 하기 싫어서, 혹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만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일하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다. 이런 처지라면 개인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게 형평에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복지는 생산 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세금 나눠먹기가 된다.
무상보육, 일자리 창출에 맞춰야
무상보육은 맞벌이 여성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보육을 가정이 개별적으로 하기보다는 국가가 세금을 사용해 공동으로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취지에서 등장한 것이다. 여성을 아이에게서 해방시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 직장여성이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주부가 직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복지보다 일자리가 먼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순서가 뒤바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복지 강화를 외치면서 들고 나온 말이 생산적 복지다. 한나라당에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생산적 복지라는 말을 자주 썼다. 지금 한국의 복지 현장에서 그 말은 여야 모두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닥치고 복지’만이 있을 뿐이다. 복지 포퓰리즘은 다른 게 아니라 생산 활동과의 연계 고리를 잃어버린 복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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