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6년 6월 말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현지에서 만난 러시아인 중에 한국팀을 응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한 50대 러시아 사업가는 한국을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자주 거쳐 다녀서’ 친숙해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팀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연해주에서는 미국 유럽행 직항이 적어 인천국제공항을 거쳐 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항공교통 허브의 이점으로 경제효과 외에 국가 이미지 상승효과도 있구나’ 생각하게 했다.
요즘 일부 학계에서 나오기 시작한 ‘한국 자유무역협정(FTA) 허브론’은 앞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질 새로운 키워드가 될 것 같다. ‘FTA 허브론’은 ‘FTA 허브’가 무엇이고 허브가 되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찾는 것이다.
올해 3월 한국과 미국 간 FTA가 발효되면 한국은 세계 양대 시장인 미국 및 유럽연합(EU) 모두와 FTA를 발효하는 최초의 국가가 된다. 일본과는 FTA를 위한 산·관·학 연구를 마쳤으며 중국과도 빠르면 3월 FTA 협상을 시작한다.
한국 FTA 허브론은 이 같은 한국의 FTA 추진 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전 삼성경제연구소장)는 연세대 EU센터가 최근 개최한 브뤼셀 포럼에서 한국이 FTA 허브가 될 경우 어떤 효과가 있는지, 한계는 무엇인지 등을 설명했다.
지난해 공산품 평균관세는 중국 8.9%, 미국 3.5%, EU 5.6% 그리고 일본은 2.0%였다. 만약 한국이 중국과 FTA를 맺어 관세가 0%가 되고 미중 간에 FTA가 없으면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은 중국 시장 진입에서 미국산 제품에 비해 8.9%의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 또 한-EU 간 FTA가 완전히 발효해 서로 관세가 없어지면 EU 시장에 진출할 때 한국산 제품은 중국 일본에서 생산된 제품에 비해 5.6%의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
이는 미국 중국 EU 일본의 기업이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한국과 FTA를 맺은 파트너에게 수출하면 그만큼 유리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이 상대 지역에 진출할 때 ‘관세 우회(tariff jumping)’의 발판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FTA 허브’ 이점은 한국의 FTA 파트너들이 횡적으로 서로 FTA 등 관세 인하 협력이 없을 때 더욱 극대화된다. 정 교수는 “미국 일본 EU 중국 등 4개 파트너 간 FTA가 상당 기간 내에 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며 “한국이 허브의 지위를 활용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곽복선 KOTRA 중국조사담당관도 “올해로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았으나 중국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 실적은 미미했다”며 “한중 FTA가 체결되면 중국 자본 유치에 어떤 유리한 점이 있는지를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물론 공장입지는 관세율 몇 %만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임금 수준과 적정 인력 공급, 시장과의 접근성 등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안목과 판단으로 결정된다. 이 때문에 ‘허브’ 효과에 지나친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될 것이다. ‘순수 경제 이론’ 같은 단순함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한국이 주요 경제권과 FTA를 맺어 교역 확대는 물론이고 ‘FTA 허브’의 장점도 살릴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한때 한국에서 유행하다 외환위기를 맞고 자취를 감추었던 ‘금융 허브론’보다는 훨씬 실질적으로 진지하게 토론해 볼 만한 주제임은 분명한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