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려고 하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라고 했던 이는 17세기의 시인 존 던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서로 화합하기 위해 태어났다/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노래했던 이는 20세기의 시인 엘뤼아르였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삶으로, 누군가의 울음은 나의 눈물로 이어져 있다. 우리가 화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연대해야 하는 까닭이다.
‘학교폭력’, ‘병든 10대’, ‘청소년 비행’이라는 단어들이 연일 지면과 화면을 도배하고 있다. 근본 원인이니 대책 마련이니, 교권 확보니 무한 입시경쟁이니, 왜곡이니 해명이니 설왕설래 중이다. 몸은 커지고 욕망은 부풀 대로 부풀어 있는데 그에 합당한 인성교육은 못 받은 채 입시경쟁에 내몰린 탓이라고 한다. 맞벌이 부부, 한부모가 늘어나고 벌어 먹고살기 급급해 아이 교육을 학교와 학원에 떠넘긴 탓이라 하고, 음란·폭력물이 넘치는 인터넷, 모바일 기기가 폭력을 가르치고 범죄도구로 쓰인 탓이라고도 한다. 경쟁 시스템은 확대재생산하면서 처벌만 강조하는 교육당국과 교육정책 탓이라고도 한다.
학교폭력은 마음을 소홀히 한 결과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와 청소년을 학생으로 둔 교사들이 체감하는 청소년 문제들은 훨씬 심각하고 훨씬 난감하다. 원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쉽사리 해결 가능한 원인들이 아니기에 때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될 때도 잦다. 아이들이 병들었는데, 가정과 학교와 사회와 국가의 미래가 양양할 리 만무하다. 연대와 나눔은 공감과 배려에서, 공감과 배려는 이해와 존중에서 나오고, 이해와 존중은 상상과 관심에서 나온다. 죄다 마음이 하는 일이고, 마음과 마음을 섞는 일이다. 한데 이 마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한다. 일등, 합격, 명품, 게임, 성형 등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좇는 우리 아이들이 날로 낮아지는 게 이 ‘마음지수’이고, 이 마음을 소홀히 하는 데서부터 청소년 문제들이 파생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 중 사용 빈도수가 가장 높은 단어도 ‘마음’이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만큼 알기도 어렵고, 얻는 것은 물론이고 간직하기도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맛보는 자들이 시인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고 공감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시심이다. 시 뒤에 유독 사람(人)과 마음(心)을 붙이는 까닭일 것이다. 시의 기본은 사물에도 마음이 있다는 의인화이다. 사물도 꿈을 꾼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꽃, 나무, 강아지, 세상 모든 것과 대화하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의 마음이 동심(童心)이고, 그 동심이 바로 세상만물에서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니 시심과 동심은 한통속인 것이다.
도화선처럼 달려가는 시심은 ‘자,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그려 봐, 느껴 봐, 상상해 봐, 생각해 봐’라는 주문에서부터 발화된다. 사실은 공감과 배려의 출발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에 그 무엇인가를 그려 보고 느껴 보고 상상해 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다면, 타인의 마음 아니 사물의 마음까지를 헤아리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인지상정, 역지사지, 측은지심의 마음이 살아 있다면 스스로는 물론이고 타인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아프면 남들도 아프고, 남들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것을 알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러니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표현하는 교육에서부터 청소년 문제의 답을 찾는다면 어떨까. 심미적 영혼이나 유희적 정신이라는 말도 좋고, 철학적 사유라는 말도 좋다. 사실은 안 보이는 것들을 믿을 수 있고, 안 보이는 것들이 가진 가능성과 가치를 헤아릴 수 있는 사회 풍토와 교육 현장이 청소년 문제의 근본임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의 거울이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우리가 용도 폐기하고 있는 사랑, 꿈, 희망, 자유, 정의, 윤리, 평화, 아름다움, 나눔, 연대와 같은 인문적 소양부터 점검해 볼 일이다.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 길러줘야
상처받고 닫히고 억압된 청소년들의 마음에, 상상하고 분출하고 창조하는 마음으로 전환할 수 있는 마음의 뒷길, 마음의 작은 길, 마음의 마중길을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상상하는 마음이야말로 사람을 헤아리고 사랑하도록 이끄는 힘이다. 공감하는 마음이야말로 사물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함께 나누고 연대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다. 대책 없는 이 총체적 난국에 참으로 대책 없이 아이의 마음, 시인의 마음, 그들의 심장을 새삼스레 들춰내는 이 중언부언은 시대착오적이고 덜떨어진 시인의 ‘들이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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