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석호]김정은 ‘사랑의 기념사진’만으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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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일 03시 00분


신석호 채널A 정치부 차장(북한학 박사)
신석호 채널A 정치부 차장(북한학 박사)
초록색 군인 코트를 입고 원통형 털모자를 썼지만 어린아이들이 분명했다. 계단에 빼곡히 줄을 맞춰 서 박수를 치는 ‘어린 군인’들의 앳된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곧이어 나타나 이들과 포옹한 북한 3대 세습 후계자 김정은의 얼굴에도 만족함이 흘러넘쳤다. 북한 매체들이 지난달 25일부터 보도한 김정은 만경대혁명학원 방문의 한 장면이다.

북한 스카이다이빙 선수인 전철구 김성심, 김형준 강혜심 부부는 새 최고지도자 앞에서 고공낙하 실력을 뽐낸 뒤 그의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렸다. 조선중앙TV는 29일 김정은이 항공체육단체인 ‘서부지부 항공구락부’를 방문했다고 전하면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부부들과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었습니다”라고 찬양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두 달이 채 안 된 상중이지만 아들 김정은은 ‘현지지도 정치’에 다걸기(올인)를 하고 있다. 1월 한 달 동안 매체들이 보도한 것만 14건으로 이틀에 한 번꼴이다. 군부대 방문이 10건으로 가장 많지만 모형항공기 비행과 스카이다이빙 시범 공연을 즐기는 ‘놀이형 현지지도’도 적지 않다. 아버지가 1994년 7월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꼭 100일 동안 은둔생활을 한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김정은은 현지지도를 다니며 ‘뭐 정치 참 쉽네’라고 생각할 것 같다. 군부대, 공장, 학교, 공연장 등 자신이 나타나는 곳마다 당국자와 인민들이 나와 환호한다. 20대 후반인 자신을 최고지도자로 떠받들고 심지어 ‘어버이’라 부르며 눈물까지 흘린다. 자신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말 한마디로 모든 국사가 술술 풀릴 듯 착각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최고지도부와 주민들의 집단 흥분 상태가 올해 4월까지는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2월 16일에는 김 위원장 70회 생일, 4월 15일에는 김 주석 100회 생일 등 정치행사가 잇따른다. 이미지 조작을 위한 ‘미디어 정치’는 쉽다. 중국이 대규모 지원을 한다니 평양의 핵심 지지 계층에는 고깃국과 쌀밥을 배급할 수 있을지 모른다. 생전 아버지가 초를 잡아둔 계획에 따라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며 인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김씨 왕조를 찬양하는 무대의 불이 꺼지고 새 지도자에 대한 인민들의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이 곧 온다. 여느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김정은도 정책 성과를 내 자신의 정당성을 쌓아가야 한다. 평양의 외교공관들에 전기와 물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북한에 가장 절실한 것은 역시 경제 회복이다.

북한 체제에 아직 희망을 가진 이들은 이런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김정은이 개혁과 개방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을 다시 받아들이는 등 ‘비핵화 사전조치’를 이행할 거라고 내다본다. 6자회담을 열어 대화에 나서는 척할 거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김정은의 정책 수행 능력에 고개를 내젓는 사람이 더 많다. 기득권 유지를 바라는 군부 등 ‘북한 수구 세력’의 반대를 누르고 ‘전환의 계곡’을 건널 능력이 과연 그에게 있을까. 대화 제의와 도발을 번갈아 하며 강대국 미국을 상대했던 아버지의 ‘선군외교’를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오늘 또다시 현지지도 길에 오를 김정은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신석호 채널A 정치부 차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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