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가장 거론하기 싫어하는 대표적인 부당한 기득권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당의 개혁적 이미지를 국민에게 선보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은 지금 사분오열돼 혼란을 겪고 있는 160여 명의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결속할 18대 국회의 마지막 기회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지금 국민으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비상상황이다. 따라서 지엽적이고 표피적인 정책 선택으로는 어렵고, 근본적인 정치개혁의 화두를 하나 이상 가지고 국민들에게 다가서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초지방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인 것이다.
이에 대한 최근 역사를 살펴보면 2005년 6월 당시 열린우리당은 제17대 국회 개혁당론을 깨고 폐지는커녕 기초의회 의원까지 오히려 확대해 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큰 반발을 샀다. 결국 그 이듬해 5·31지방선거에서 대패함으로써 열린우리당이 공중 분해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10년 6·2지방선거 전 2009년 3월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만들어지고 7월 ‘사회원로 선언’, 10월 ‘전문가 학계 선언’이 있었지만 그대로 선거가 치러졌다. 그 선거 후 작년 2011년 11월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원협의회 모두가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인 상태다.
우리나라의 정당 현실은 진성당원 등 민주적 뿌리가 약하고 따라서 상향식 공천제도가 어렵기 때문에 정당공천제가 그 지역 맹주격인 국회의원들과의 관계에서 정치 부패의 온상이 되어 왔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도 돈 공천과 관련한 풍문이 난무했다. ‘기초단체장 공천은 7당(當)6락(落)’(7억 원을 내야 공천을 받고 6억 원을 내면 못 받는다는 뜻)이고, ‘광역의원 공천은 3억 원’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실제로 2010년 4월 9일 전남 해남군수(민주당)와 4월 16일에는 여주군수(한나라당)가 공천과정에서 구속됐다. 그리고 그런 구조적 모순 속에서 2006년 민선 4기 출범 이후 4년간 기초자치단체장 230명 중 113명(49.1%)이 인허가와 공무원 채용 및 승진 등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그중 45명(19.6%)이 물러났다.
기초자치단체 정당 공천제의 문제는 선거 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 선거의 공천을 의식해 평시에도 국회의원에게 예속돼 부작용이 심각하다. 한마디로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의 행보가 자유롭지 못해 기초지방자치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경우 기초의회가 단체장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고 반대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를 서로 다른 정당이 지배하는 경우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계속해 자치행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여하튼 정당공천제 때문에 지역 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지방의회가 중앙의 정치논리로 황폐화되고 있다.
그리고 정당공천제를 통해 지방의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중앙정치 무대에 서게 한다는 일부 정치권의 논리도 허구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장차 자기에게 도전할 만한 인물은 단체장 후보나 의원 후보로 추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오랜 지방자치의 역사 속에서 1990년대 이후 기초자치단체는 거의 100%가 무소속이다. 중앙정치의 폐해를 깨달은 일본인들이 현명하게 선택한 결과다. 우리도 더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하루 빨리 정당공천제 폐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로써 제19대 국회가 깨끗한 정치의 전당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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