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처음 정치부로 발령받은 날, 한 선배가 이런 조언을 했다. “정치인은 싫어해도 정치는 싫어하지 마라.” 요즘 들어 그 뜻을 자주 곱씹게 된다.
여야는 모두 4·11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의 관심을 끌고자 몸이 달아 있다. 정당이 국민의 눈에 들겠다는 걸 나무랄 이유는 없다. 문제는 방향이다.
한나라당에선 트윗질(트위터를 하는 행위)이 중요한 공천 기준으로 떠올랐다. 이 당에서 트윗질을 하지 않는 건 여전히 국민과 소통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간주된다.
‘트위터=소통’의 신화는 야권의 프레임이다. 한나라당이 여기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140자의 단문을 통해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설명해야 하는 우파는 구호를 앞세운 좌파를 이기기 힘들다.
더 근본적으로 트윗질은 과연 소통 행위인가. 한나라당 당권파가 ‘공공의 적’으로 여기는 이재오 의원은 누구보다 트위터에 열심이었다. 그런 그가 왜 당 내 인사들과도 소통하지 못했을까. 소통은 입이 아니라 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윗질에 열을 올리는 사람치고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는 이가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민주당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에 대중이 열광하자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슈스케 방식으로 뽑겠다고 나섰다가 민망하게 됐다. 참가인원이 한 달간 400여 명에 불과했다. 슈스케 방식을 도입하면 젊은 인재들이 구름같이 몰릴 줄 알았던 게 착각이다.
국민은 왜 정치인을 싫어할까? 트위터를 하지 않아서? 공천과정이 재미없어서? 그렇다면 트위터를 하고 공천과정을 예능 프로그램처럼 만들면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강조한 대로 국민의 삶과 유리된 정치가 피부에 와 닿는 정치로 바뀔까?
요즘 지하철에는 한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을 패러디한 선전문구가 곳곳에 붙어있다. ‘KTX 민영화가 재테크인지 아닌지 애매∼합니다. 재벌이 눈독 들이면 재테큽니다. 그분(이명박 대통령을 지칭) 임기 내에 끝내면 재테큽니다. 다음이 젤 중요해요. (KTX 노선이) 그분 집 근처면 100% 재테큽니다.’ KTX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철도노조의 광고다.
약사들은 또다시 감기약 소화제 등 가정상비약의 슈퍼 판매를 집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KTX 민영화나 슈퍼에서의 일반의약품 판매 등은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찬반이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이다. 바로 그런 곳에 정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런 갈등을 조정하고 해법을 내놓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개콘의 ‘비상대책위원회’를 떠올리게 만든다.
“의원님, 약사들을 만나 해법을 찾아보시죠?”(보좌관)
“야! 안돼∼ 총선 앞두고 표 떨어질 일 있니? 그냥 트위터나 열심히 하자.”(의원)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지옥으로 가는 길을 알아야 대중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고 했다. 정치인을 싫어해도 정치를 싫어해선 안 되는 이유다. 정치를 외면하면 세상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정치가 지탄을 받는 건 정치인들에게서 국리민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욕먹는 걸 감수하는 책임감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박수 받고 이미지 관리하는 데만 신경 쓰는 그들이 정치 자체를 싫게 만든다. “야!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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