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한민국을 달군 화두는 분노였다. 각종 선거에서 나타난 20∼40대의 분노가 그것이었다. ‘세계 9번째의 무역 1조 달러 국가’라지만 가라앉은 서민경기, 치솟는 물가와 전세난, 양극화, 청년실업, 노후불안에 민심이 돌아섰다. ‘경제지표나 대기업은 괜찮다는데 나는 그 온기를 못 느끼겠다’는 상실감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는 세계적 현상이기도 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선정한 2011년의 단어는 ‘쥐어 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이었다. 주간지 타임은 작년의 인물로 ‘항의자(the protesters)’를 골랐다.
성장과 복지의 조화로운 조합 필요
분노에 놀란 정치권은 복지 확대, 부자 증세(增稅), 대기업 규제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마치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현 정부가 외쳐온 공정사회, 동반성장, 공생발전도 같은 취지다. 흥미롭게도 3대 정치세력이라 할 수 있는 박근혜, 이명박, 민주당 캠프에 김종인, 정운찬, 유종일 씨가 각각 포진해 있다. 김-정-유는 경제민주화를 주창해온 대표적 학자들이다. 5년 전 대선에서는 ‘747공약’(연 7% 성장, 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 진입)으로 대표되는 ‘성장 경제’에 대한 기대가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번 대선에서는 분배와 복지, 경제정의, 휴머니즘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공존 경제’가 화두가 될 것이라는 것이 본보 설문조사 결과다.
물론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시장의 효율과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공동체 구성원의 박탈감을 달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 한국은 산업화, 민주화를 이룩한 기존의 철학, 가치, 제도, 관행 등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시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정치생태계, 시장생태계, 자연생태계의 정상화가 요구된다. 당장 복지 확대에 필요한 세금을 더 걷으려면 공공부문에 대한 신뢰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복지전달체계를 효율화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책 어젠다가 정치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진실과 공익(公益)은 간 데 없고 정파적 이해가 난무했다. 진영을 나눠 사생결단 식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광우병 시위, 한미FTA, 세종시가 그랬고 4대강, 무상급식, 영남권 신공항이 그랬다. 올해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숱한 논쟁거리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불안하다.
전형적인 보수정책 패키지, 또는 전형적인 진보정책 패키지로는 안 된다. 결국 정책은 성장과 복지의 조합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대적 상황에 맞춰 자유주의 또는 공동체주의 색채가 더 혼입되도록 정책매트릭스를 짜는 것뿐이다. 유연하고 넉넉한 실용주의자가 필요하다. 개혁의 급소를 파악해 작은 힘으로 크게 바꿀 수 있는 국가사회 경영의 실력이 요구된다.
무한경쟁에 상처받은 이웃 품어야
지금까지 인류는 새로운 생존환경을 만나면 자신과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는 방식으로 적응하고 진화해왔다.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이성과 합리로 세계를 해석하기 시작했고, 임금노동자에 대한 수탈이 극에 달하자 ‘혁명하는 인간상’이 대두했다. 세계대전 앞에서 왜소해진 우리는 실존성에 눈을 떴고, 근대성과 합리성의 무차별적 지배에 반발해 포스트모더니즘에도 기웃거렸다.
이제 인간에 대한 또 한번의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 때다. 글로벌 무한경쟁이라는 낯선 생존조건에서 상처받고 절망한 인간을 보듬어 우리 이웃의 자리에 되돌려놓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2010년 7월부터 ‘공존’을 어젠다로 삼고 기획특집을 해왔다. 지금은 ‘공존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6번째 시리즈를 싣고 있다. 물론 몇 점의 기사로 세상이 확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믿음이 필요하다. 언론 역시 사회적 갈등을 증폭하기보다는 공약수를 찾고 공존의 물꼬를 트는 인프라로 작동해야 한다는 믿음에 충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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