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구식 집에 살고, 서구식 옷을 입으며 근 한 세기를 살아 온 우리에게 이제 전통이라는 것은 외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음악 미술 문학과 같은 예술도, 철학도 모조리 서구의 것을 답습하고, 새로운 종교는 전통을 아예 미신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은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 그 한마디로 동양철학은 미신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완전히 유리되었다. 적어도 우리의 전통에서 우리는 외국인과 다름없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외국에서 건축가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안내를 맡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서구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전통건축들은 참으로 이상한가 보다. 기껏 힘들여서 그들에게 전통정원을 다 보여주고 나면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정원은 언제 보는가.” “정원은 어디 있는가.” 그들은 소쇄원에서조차 그런 질문을 했다.
그리고 조선의 반가들을 보여 주고 나면 그들의 반응은 다 똑같다. 좀 의아한 표정으로 양손을 마주대고 벌려서 거리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손짓을 취한다. 집들을 보며 좀 크고 작은 차이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똑같은 집들이 더 붙어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그 후 같은 한국인들끼리 갔을 때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고 나는 전통건축을 설명하는 다른 방식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아울러 나는 우리 사회가 서구의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전통과 급격하게 단절된 우리가 기댈 언덕은 빠른 근대화를 통해 배운 서구식 모델이었다. 없는 전통에 기대봐야 넘어질 일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새것 콤플렉스는 유행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신 차리지 못하고 이끌려온 상황이지만 한 사회가 외부의 힘에 이렇게 경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건축은 한 사회의 정신을 담고 있는 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신없음을 지금 우리의 건축이 대변하듯이, 조선의 건축은 조선 사대부의 정신을 담고 있다. 21세기 정신문명의 위기는 전 지구적인 생태의 위기와 맞물려 있다. 이 톱니바퀴를 조화롭게 돌리는 새로운 전통의 재구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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