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관련된 사건의 이면에 반드시 게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대구 중학생을 자살에 이르게 한 왕따 폭력의 배경에도 가해학생들이 게임 아이템을 해킹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도 게임업계는 포괄적인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사건의 본질은 게임중독과 관련이 없다”고 강변했다. 칼에 찔려 죽었다고 해서 “칼 제조사에 책임이 있느냐”는 인식인 것 같다.
상품의 구매와 소비는 개인의 책임에 속하는 영역이지만 모든 제조물이 그런 것은 아니다.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을 규제하는 것은 음주 흡연의 폐해가 크고 청소년의 육체와 판단능력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구매하는 담배에도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어린이가 칼을 만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가정과 사회의 책임이지만 컴퓨터를 통해 접속하는 게임은 제조사의 책임을 면제시킬 수 없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의 뇌는 마약에 중독된 상태와 같아 인지 능력과 감정조절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피질이 물리적으로 손상돼 참을성이 떨어지고 폭력에 감성이 무뎌진다는 것이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대진 박민현 교수팀은 인터넷과 게임중독은 지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청소년의 학습부진, 수면부족, 폭력성을 유발하는 게임중독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미래세대의 지적 계발과 정신 및 육체의 건강이 달려 있다.
자정 이후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금지한 셧다운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 국내 3대 게임업체의 대표적인 전체 이용가 등급 게임 6종의 심야시간 동시 접속자는 지난해 11월 20일 셧다운제 실시 이후 불과 4.5% 줄어드는 데 그쳤다. 청소년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훔쳐 접속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게임 이용이 늘어나면서 셧다운제의 풍선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3일 제113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청소년들을 순화하는 데 게임산업계가 기여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게임업계는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자동차로 깔아뭉개는 것 말고 유익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게임중독의 예방과 중독자 치료에도 관심을 기울일 책무가 있다. 돈은 게임업계가 벌면서 게임중독의 부작용 치료를 사회와 정부에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게임업계가 사회적 책무를 계속 외면하면 정부가 규제의 칼을 들이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