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부 소도시 포츠머스에서도 가장 못사는 지역 ‘찰스 디킨스’에서 오늘부터 축제가 벌어진다. ‘크리스마스 캐럴’ ‘올리버 트위스트’로 유명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가 200년 전 오늘 이 동네에서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행사다. 당대 최고의 부와 명성을 누린 작가의 이름과 쇠락한 지역풍경이 영 안 어울리지만 디킨스의 후손들은 “할아버지는 당신의 이름이 호화 아파트촌에 붙어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디킨스는 빚에 몰린 아버지 때문에 열두 살부터 공장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 자본가들의 탐욕, 정치가의 부패를 통렬하게 고발한 작품들이 생생한 체험 속에서 나왔다. 1854년 소설 ‘어려운 시절(Hard Times)’은 산업혁명 초기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서민이 실제로 자주 쓰는 말이었다. 그래서 ‘디킨지언’이라고 하면 디킨스 연구자라는 뜻 말고도 노동자들의 가난에 찌든 삶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고유명사가 됐다. 동시대를 살았던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정치적 사회적 진실에 대해 어떤 정치가나 언론인, 도덕주의자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해준 사람이 디킨스”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진전과 함께 자본주의도 진화했다. 노동자가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었던 디킨스 시대는 초기 자본주의 1.0시대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1930년대의 수정자본주의(2.0)와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는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3.0)까지 지나면서, 자본주의 아닌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성숙한 자본주의가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수록 ‘무산자들의 유토피아’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디킨스 탄생 200주년을 맞는 오늘,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소득 양극화로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일각에선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도 살아난다. 그러나 ‘유능한 정부’가 있어야만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자본주의 4.0’의 저자 아나톨리 칼레스키는 말한 바 있다. 시리즈로 이어지는 책을 많이 팔려고 최대한 감질나게, 때로는 길게 쓰곤 했던 디킨스는 사회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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