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늦여름 정전사태 이후 전력 공급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이는 지난 수년 사이 각종 에너지요금이 급등했음에도 전력요금은 물가 안정을 이유로 계속 인상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보다 2∼3배 많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산업용 전력 소비량은 한국을 100으로 보면 미국은 51, 일본은 31, 독일은 37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은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싼 데 기인한다.
우리 전기요금은 2010년 기준 1kW에 평균 87원으로 미국 112원, 일본 222원에 비해 현저히 저렴하다. 산업용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싸다. 이렇게 싼 전기요금은 오히려 에너지 소비의 왜곡 현상을 가져오게 된다. 기름이나 가스를 쓰던 소비자들이 전기로 바꾸고 있다. 주물공장은 경유로 가열하던 노(爐)를 전기로로 바꾸고 콘도미니엄은 가스레인지 대신 전기스토브로, 비닐하우스는 기름난로를 전기난로로 교체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름에는 냉방용, 겨울철에는 난방용 전기사용을 증가시켜 최대전력(peak)이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럼에도 난방과 산업계의 가열로(加熱爐)를 가스로 교체할 것을 권고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으니 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같은 현실에서 그나마 전력을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크게 기여해온 효자는 원자력 발전이다. 우리나라 산업 중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품목이 늘고 있는 추세다. 반도체와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등이 대표적이다. 또 조선, 제철, 조강 생산량 그리고 초고속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정보기술(IT)도 세계 1위를 넘본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눈여겨볼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의 운영 실적이다. 작년 말 세계원전사업자협회(WANO)에서 내놓은 ‘세계 각국의 원전 운영실적’ 점수를 보면 10기 이상의 원전 보유국 중 우리나라는 단연 1위다. 1970년대 동해안의 작은 어촌 고리에서 시작된 우리 원자력 발전이 30여 년이 지난 뒤 21기를 보유하게 됐고, 세계 최고의 운영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2009년 선진국을 제치고 아랍에미리트에 신형 원전 4기를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야말로 원자력 불모지에서 단번에 첨단기술 수출국으로 탈바꿈한, 가슴 벅찬 일이었다.
혹한기 전력 공급 부족에 마음 졸이고 있는 이때, 몇 차례의 원전 불시 정지는 국민을 불안케 했다. 우리 땅에 지어진 첫 원전인 고리 1호기 건설 때부터 원자력과 인연을 맺어온 많은 엔지니어들은 안타까운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원전의 불시 정지는 해마다 몇 차례씩 거듭되는 단순 고장 현상이다. 원자력발전소 제어 계통에는 수백만 개의 센서 전기접점(接點)이 하루에도 수백만 번 단속(斷續)하면서 설비를 최적상태로 유지한다. 이 전기접점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발전소는 자동 정지된다. 이는 원전 안전 운전을 지상 최대 목표로 한 고장 안전설계(Fail Safe Design) 개념 때문이다. 고장 정지 때문에 전력 공급 부족사태를 빚는다는 것은 우려할 만하지만 원전 안전을 위협할 요소는 아니라고 본다.
원전 고장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점은 원전 불시 정지에 따르는 운영 관계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질타와 조직 내의 징계하려는 분위기다. 이런 질타나 징계 분위기는 원전 운영 관계자들을 불시 정지를 인위적으로 막아보려는 심리상태로 유혹해 무리한 운전으로 원전의 안전 운영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원전 종사자들은 안전성 확보를 생명과 같이 귀중한 요소로 생각한다. 병사가 철책을 지키듯 철두철미한 안전의식으로 무장된 발전소 직원들은 불철주야 안전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안전의식 함양으로 우리나라 원전 이용률은 세계 평균을 훌쩍 뛰어넘어 안전관리와 원전 운영의 신뢰성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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