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교폭력 대책, 내놓고 잊어버리면 휴지일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7일 03시 00분


급우들의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대구 중학생이 지난해 12월 20일 자살한 지 한 달 보름 만에 정부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해 만든 이번 대책은 피해학생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가해학생 처벌과 함께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대책의 성공 여부는 현실에 제대로 들어맞느냐, 그리고 얼마나 지속적으로 시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대책은 학교장 및 교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우리 학교에는 폭력이 없다”며 사건을 부인 또는 은폐하는 학교장들이 학교폭력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책에는 학교폭력 은폐가 발각될 경우 학교장과 관련 교원을 강력하게 징계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함으로써 상급학교 진학 때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주목된다. 성적뿐 아니라 폭력 가담 등 품성과 생활태도에 관한 기록이 상급학교에 전달되도록 한 것은 맞는 방향이다.

피해학생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학교안전공제회가 우선 피해학생에게 치료비를 지급하고 사후에 가해학생에게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조직폭력배를 방불케 하는 청소년 폭력서클과 일진 색출을 위해 일진 신고가 2회 이상 들어오면 경보를 가동한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신고할 경우 폭행 등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강력한 처벌과 원거리 전학 같은 격리조치로 보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을 심어줘야만 일진을 퇴치할 수 있다.

여론이 시끄러울 때마다 역대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범국민적으로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을 벌이며 학교폭력 및 유해환경 단속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엔 부산 일대 학교에서 전직 경찰관이 학교에 상주하는 스쿨 폴리스 제도를 시행했다. 이런 조치는 교사와 학부모 경찰관의 눈을 피해 일어나는 왕따 폭력을 막는 근본적 해법이 되지 못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학교폭력도 경찰력이나 처벌 강화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가정과 사회가 학생들의 바른 인성(人性)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폭력이란 단어가 학교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대구 중학생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과제를 남겨놓았다.
#학교폭력#구상권#자녀안심하고학교보내기운동#아프리카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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