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본주의에 대한 믿음 흔드는 재벌 불투명성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7일 03시 00분


한화그룹의 주력 기업인 ㈜한화가 상장폐지 심사대상에 올랐다가 증권선물거래소의 긴급구제 조치로 폐지를 간신히 모면했다. 해당 회사의 소액주주들은 자칫 큰 손해를 볼 뻔했다. 이번 소동은 ㈜한화가 김승연 그룹 회장과 측근의 횡령 및 배임혐의를 늦게 공시(公示)하는 바람에 벌어졌다. ㈜한화는 작년 2월 10일 김 회장이 불구속 기소됐다는 공소장을 받았을 때 바로 공시할 의무가 생겼지만 1년이나 지난 3일에야 공시했다. 한화는 “관련 규정을 잘못 이해해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단순 실수로 치부하기에는 께름칙하다. 공시 업무를 대충 처리한 것은 주주를 가벼이 봤다고 할 수밖에 없다. 거래소도 갈팡질팡했다. 거래소는 한화의 공시 직후 ‘6일부터 주식거래를 정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전인 5일 모든 거래를 정상화한다고 뒤집었다. 상장폐지 실질심사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기업이라 봐줬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와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이 국내 20대 그룹 중 총수가 있는 16개 그룹을 대상으로 주주권리 보호, 이사회, 공시, 감사기구, 배당 등 5개 분야의 2011년 경영건전성을 측정한 결과 전체 점수가 100점 만점에 42점에 그쳤다. 4년 전인 2007년의 46점보다 떨어졌으며 특히 5개 항목 중 ‘공시’ 부문이 가장 후퇴했다.

주주를 무시하고, 공시를 게을리하고, 권한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총수의 전횡은 한국 재계의 오랜 폐습이다. 오죽하면 ‘오너 리스크’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총수의 자녀들은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이나 유통 자회사 등을 맡아 일감 몰아주기, 주가 올려주기, 비싸게 사주기, 대규모 배당 같은 지원을 받고 ‘세금 없는 부(富)의 대물림’을 한다.

우리 대기업은 국내외적 위상과 역할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력에 비해 주가도 낮은 편이다. 이런 불이익을 받는 핵심 요인이 불투명 경영이다. 불투명한 경영은 국민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으며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긴다.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9위의 무역대국이 됐고, 증시 시가총액도 1000조 원을 넘어섰다. 한국의 국가브랜드는 15위, 국가이미지는 19위에 이르렀다는 조사도 있다. 대기업은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향상으로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
#자본주의#무역대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