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들섬은 조선시대에는 없었다. 노들섬은 일제에 의해 한강대교가 건설된 1917년 다리 중앙에 있던 모래언덕에 둑을 쌓아 만들어졌다. 1995년 한글 명칭으로 바뀔 때까지 중지도로 불렸다. 중지도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광나루 뚝섬과 함께 한강 해수욕장으로 유명했다. 시민들은 그곳에서 여름에는 멱을 감고 겨울에는 썰매를 탔다. 1968년 한강 개발이 시작돼 백사장이 사라지고 1973년 중지도 확장 매립공사 뒤에 군인과 고위 공무원들이 즐기던 테니스 코트가 들어서면서 중지도는 시민들로부터 멀어졌다.
▷1980년 이후 중지도를 시민들에게 돌려주려는 노력이 거듭 시도됐으나 모두 흐지부지됐다. 1983년 유람선 선착장 설치, 1986년 관광호텔 건립, 1989년 공원 조성 등의 계획이 나왔으나 그곳에는 지금까지도 테니스장이 자리 잡고 있다. 2004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의 설계공모 당선작이 나왔으나 최종 단계에서 비용 문제로 유야무야되고 오세훈 전 시장이 우여곡절 끝에 2010년 계획을 새로 확정했다.
▷박원순 시장이 다시 이를 뒤집었다. 박 시장의 대안은 오페라하우스 대신 텃밭이다. ‘원순 씨’의 소박함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텃밭이라는 게 꼭 면장이나 읍장이 생각하는 수준이다. 노들섬에 텃밭을 몇 개나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인구 1000만이 넘는 서울 시민을 상대로 분양한다면 몇 %나 혜택을 보게 될까. 거대 도시의 매력을 놓고 유럽에서 런던과 파리가 경쟁하듯이 동아시아에서는 서울 도쿄 베이징이 경쟁하고 있음을 잊은 모양이다.
▷조순 시장이 여의도광장에 만든 여의도공원은 너무 평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톈안먼 광장보다 더 광활한 그곳에 뉴욕 센트럴파크, 런던 하이드파크만큼 멋진 공원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고건 시장은 지하철 5∼8호선을 착수하고 완공했다.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을 복원했다. 희망제작소 등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던 박 시장이 머리를 짜내면 오페라하우스를 능가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텃밭 같은 쫀쫀한 발상일랑 접고 전임 시장의 아이디어일지라도 이어가는 게 도리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