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홍권희]미국 빅3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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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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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권희 논설위원
홍권희 논설위원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업체가 해고와 구제금융의 우울한 시절을 떨치고 부활했다. GM은 대지진과 태국 홍수로 고전한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글로벌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지난해 포드는 23년 만의 최대치인 202억 달러의 순익을 냈다. 한 달 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미국 교통부 장관이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돌아왔습니다.”

위기의식 버리지 않는 미국車노조

빅3 부활의 일등공신은 신속하게 지원을 해준 미 정부라기보다 과감하게 양보해준 전미자동차노조(UAW)다. 고임금 귀족노조였던 UAW는 2007년 GM과 교섭하면서 임금 동결, 상여금 중단, 2015년까지 파업 금지, 퇴직자 건강보험 지원 삭감 등에 합의했다. 2009년 구조조정 때는 잡뱅크(job-bank) 제의 일시중단에 동의했다. 1980년대 시작된 잡뱅크는 실직 노동자가 재취업할 때까지 퇴직 직전 임금의 최대 95%까지 보전해주는 제도다.

지난해 ‘디트로이트의 종말’ 소리가 사라지고 해고자 복직이 늘어나면서 UAW의 행보에 눈길이 쏠렸다. 그간 양보했던 복지를 얼마나 되살리자고 할지가 관심거리였다. 예상을 깨고 노조는 잡뱅크제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GM과 합의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임금 근로자를 대거 명예퇴직시키고 별도의 저임노동자 고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일자리가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노조를 과잉복지 중독에서 벗어나게 했다. 노조가 이중(二重)임금제를 도입해 평균인건비를 낮춰준 덕에 빅3는 소형차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 소형차는 고임금 근로자가 만들면 가격 경쟁력이 거의 없다. 빅3는 총 20개 공장에 230억 달러를 투자해 2만여 명을 새로 채용하겠다고 노조에 화답했다. 빅3의 소형차 경쟁력이 높아지면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업계는 불리해진다. UAW는 빅3가 현대차와 싸워 이기라며 복지를 계속 양보한 셈이다.

국내 자동차 노조는 ‘파산 위기에서 UAW의 양보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시큰둥해할 수 있지만 강성노조가 복지를 포기하면서 기업 회생에 동참한 사례는 흔치 않다. 오히려 ‘정리해고 결사반대’를 외치며 벌인 ‘옥쇄파업’ 같은 사건은 다수 기억난다. 구조조정은 쫓겨서 하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국민까지 피곤하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잘나갈 때 구조조정을 해야 상처가 적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독일 및 세계경기 하강과 일본 업체의 약진 등 악재가 겹쳐 1992년부터 구조조정 압박을 받았다. 인력은 적정 수준보다 40%가 초과됐고 임금은 포드보다 20% 높았으며 생산성은 최하위여서 수익률이 제로에 가까웠다. 1993년 회사 측은 ‘고용을 30% 줄이고 공장을 스페인으로 옮기겠다’는 최후통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폴크스바겐 20년 혁신에서 배워야

몸이 단 노조는 감원 대신 워크셰어링(근로시간 나누기) 제도 도입에 합의했다. 근로시간이 20% 줄고 임금도 16% 줄었다. 여기서 그치면 보통이다. 폴크스바겐 노사는 그간 생산성 증가 등 효과에 만족하지 않고 2004년에는 임금을 동결하고 워크셰어링을 확산시켰다. 정희식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폴크스바겐은 임기응변식 단기대응이 아니라 근본 원인을 찾아 고치는 시스템 혁신을 20년 가까이 추진한 결과 지난해 글로벌 2위로 등극했다”고 평가한다.

UAW나 폴크스바겐 노조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양보하고 또 양보했다. 폴크스바겐 노사의 5차례의 타협은 회사 전체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회사 실적 등 여러 면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는 현대차 노조가 연초에 보여준 것은 구조조정 협조와는 거리가 멀다. 현대차의 낮은 생산성이 개선될 가능성은 아직 안 보인다. 현대차 노사의 지금 모습이 10년 뒤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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